[마음의 쉼터] 끝까지 참으며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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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자아이가 양손에 사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엄마가 “사과 하나는 엄마 줄래?” 하며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왼손에 있던 사과를 한입, 그리고 잠시 엄마를 쳐다보다가 오른쪽 사과를 한입 베어 먹었다.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순간적으로 아이가 이렇게 욕심쟁이인가 생각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잠시 뒤에 왼쪽 사과를 엄마에게 건네면서 “엄마, 이거 드세요. 이게 더 달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딸아이의 깊은 마음을 미처 알지 못하고 무어라고 야단이라도 쳤다면 어린 아이는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입었을 것을 잠시 참았기에,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아이를 칭찬해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제일 앞자리에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면서 ‘참는 것’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이는 그만큼 참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또한 매우 중요하기에 강조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에서 참는 것은 때로는 사랑을 하다가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쳐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이 같은 경우를 ‘돌아온 탕자의 예화’에서 잘 알 수 있다. 외지에 나가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분깃을 모두 탕진하고 굶주림에 헤매다가 마지막으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으려고 했으나 이 또한 수월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돌아가는 탕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여기에서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였고, 외지에 나가 성공하여 금의환향할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몸성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 매일같이 동네 어귀에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완전히 거지모양을 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께 한 고백인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을 때에 그를 책망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씻어주고 새 옷을 입힌 후에 성대한 잔치를 베풀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로 맞이하는 자세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했던 선현들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며, 만약 사랑의 뜻을 이루려다가 지쳐서 이를 이루지 못하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앞의 예화에서 이 탕자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다렸던 아버지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탕자를 포기했다면, 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갓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고, 또한 아버지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돌아온 탕자는 갈 곳을 잃어버렸을 것인데,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려 준 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용서함을 얻어 다시 아버지의 온전한 아들로서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세상은 사랑이 없이 더욱 냉랭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에 편승해서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면서, 언제나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잊지 않는 자세가 크리스천의 본분일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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