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아침 7시에 고양시 일산동구의 정발산역 근처에서 승용차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의 가해자는 젊은 부인(27)이었고 피해자도 중년 여성분(홍영숙, 57)이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 차량으로 다가가자 피해자도 나와서 같이 사고 부위를 살펴보는 장면이 가해 차의 블랙박스에 녹화되고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아이가 밤새 열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을 가느라 실수로 이리되었다고 울면서 사과를 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피해자가 갑자기 손을 벌리더니 가해자를 꼭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 주고 얼굴을 감싸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빨리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라고 종용하였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가해자의 남편이 블랙박스의 내용을 한 사회적통신망에 올림으로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포털뉴스 첫머리에 오랫동안 올라와 있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고 있던 중에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분이야 말로 복 있는 사람이다 하는 감동이 왔습니다. 이 분으로 인하여 가해자와 아기와 남편과 이 글을 읽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을 것이고, 그분 자신도 이 일로 인하여 오랫동안 행복한 기억을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방향성을 정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악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자입니다. 시편 1편의 ‘복되도다’의 아쉬레는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가거나 걷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1:1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을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중에 누군가가 ‘목에다 손을 얹고 나와서 먼저 큰소리를 치며 상대방을 추궁하라’는 말을 해 주었고 그 말을 따랐다면 그는 복 있는 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복 있는 사람이 마음이 가난해서, 애통해서, 온유해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긍휼히 여겨서, 마음이 청결해서, 화평케 하여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서 된다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은 그렇게 산다 하신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 됨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구원받음으로 인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구원을 믿는 것이며,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답게 사는 일입니다.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길이 복 있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로 살아가는 길에 축복이 있습니다. 복 있는 자로서 축복을 받으면 본인에게도 행복한 일이고 타자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복 있는 자 되었음을 믿으시고, 복 있는 자 답게 살아가심으로, 온 세상에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방영철 목사
<서울관악노회장‧광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