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 수밖에 없지만 일평생 살아본 아파트들이 모두 1층이다. 물론 지금의 김포집도 1층인데 경사면 위에 지은 건물이라 아래에서 보면 2-3층 높이다. 아파트 청약을 할 때 맨 끝까지 남아있는 게 1층이어서 더 쉽게 차지했던 듯도 한데 하여튼 결혼 후 다섯 차례 들어간 아파트가 죄다 1층이었다. 집수리를 위해 한달간 임시거처로 삼은 오피스텔이 4층이었던 것이 유일한 예외였다.
1층 아파트는 다른 층에 비해 조금 싸다는 이점이 있기도 한데 거기다 창밖에 나무들이 서 있는 뜰이 있어 자기집 정원 같은 느낌을 주어 좋다. 나이가 드니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승강기를 탈 일이 없어 편하나 그 대신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만나 얼굴을 익힐 기회가 없다. 택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우리집에 배달오는 기사는 수고를 조금 덜한다고 생색을 낼 수도 있다. 이런 장단점들이 있는 가운데 한 가지 더 고마운 것이 맨 아래라 층간소음에 신경쓸 일 없다.
김포한강신도시에는 가까운 마곡지구 등에서 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살고 그래서 어린애들도 많다. 어느 날 저녁 바로 위층에 이사 온 부인이 보자기에 싼 선물을 들고 와 인사를 하고 자기네는 내외가 다 직장에 나가 아이 둘을 할머니가 돌봐 주신다면서 애들이 위에서 쿵쾅거려 죄송하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 염려 말라, 우리는 애들 노는 소리, 우는 소리도 좋아한다’고 안심시켰다. 사실 동네에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보기 즐거운 게 없는데 그까짓 발 구르는 소리쯤이야!
우리집은 TV를 켜고 온라인으로 새벽기도회를 드리는데 아내의 청력이 약해 볼륨을 높여야 하기에 소리가 옆으로, 위로 울려 남들의 잠을 깰까 걱정된다. 그래서 위층 윤서네에게는 말하자면 피장파장이니 아이들 뛰는 것 너무 막지 말라고도 일러주었다. 그러던 얼마 후 윤서 엄마가 또 떡을 들고 와서는 저희가 처음에는 전세로 들어왔는데 우리가 자기네 식구를 층간소음 고민에서 해방시켜 주어 이번에 이 아파트를 매입하기로 했다고 웃음 띄며 말했다. 돈이 여유가 있어 세든 집을 사는 것은 축하할 일인데, 우리에게는 여기를 떠나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웃에게 좋은 일은 내게도 좋은 것이다. 성경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가 말하는 이웃의 뜻은 광범한데 인간 세상에서 가족다음으로 가장 귀중한 것이 이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이웃 사랑은 인간의 윤리의식이 가해진 당위성의 명제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라는 데 이르려면 상당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생활양식에서 이웃 간에는 무슨 ‘품앗이’가 요구되는 일도 없어 완전히 남남으로 살아가도 별 문제가 없는데 여기에 이해와 존중과 나아가 사랑이라는 요소가 가해지면 공동체가 당장 천국을 닮아가는 기적을 이룬다.
층간소음의 문제는 이웃에 대한 양보와 참음의 한계를 시험한다.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여 신문방송에 보도되고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 나라에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과 몇십센티미터의 콘크리트 천장과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있나 생각해 보면 그래도 우리네 이웃 간의 넓은 마음을 인정하게 된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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