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단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어렸을 적에 매우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욕심 많은 그를 피해서 하나씩, 둘씩 그의 곁을 떠나고 그는 외톨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모두 자기의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국수 두 그릇을 삶아 오셨습니다. 한 그릇은 국수 위에 계란 한 개가 얹혀있었고 다른 그릇에는 계란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거라.” 아들은 당연히 계란이 있는 그릇을 골랐습니다. 그러나 국수를 거의 다 먹어 갈 즈음, 아버지 그릇에는 국수 밑에 두개의 계란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잘못 골랐다고 후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남을 쉽게 이기려 하면 오히려 네가 지는 법이다.”
그 다음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국수 두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들을 불렀습니다. 한 그릇에는 계란이 있었고 다른 한 그릇에는 계란이 없었습니다. “네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거라.” 이번에는 당연히 계란이 없는 그릇을 골랐는데 아무리 국수 밑을 찾아봐도 계란이 한개도 없었지요.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아, 너무 경험에 의존하지 마라. 삶의 경험이 너를 속일 수도 있단다. 그럴 때는 화를 내거나 실망하지 말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거라.”
또 한 번은 아버지는 국수 두 그릇 중, 아들에게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다소 철이 든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해오셨으니 아버지께서 계란이 있는 국수를 드시는 게 당연합니다. 저는 계란이 없는 국수를 먹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수 위에 계란이 없는 국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아들은 이번에도 자기 국수에는 계란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국수 그릇 밑에는 계란이 두개나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또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남에게 베풀어라. 그러면 더 좋은 일이 너에게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들은 아버지가 “국수 사건”을 통해 주신 이 세 가지 교훈을 명심하고 살아왔으며 그는 흣날 고백하기를 그가 그의 인생에서 다소 성공을 했다면 그것은 모두 “아버지가 주신 세 가지 교훈”의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인 “아들”은 생각해보면 사실상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13장 11절 이하의 성구가 떠오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하지만 장성해서는 말이나 깨닫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장성한 만큼 성숙해야 합니다. 장성하고서도 어린 아이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미성숙한 사람이요,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장성해서는 성숙한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숙하고 장성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어디까지 자라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말합니다. 다시 풀어 말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럼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을 “미완(未完)의 대기(大器)”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앞으로 잘만 자라면 누구라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이들 속에는 위대한 씨앗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