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13-25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4-16)
오늘의 말씀에 거룩함이란 단어가 눈에 뜨이며 가슴에 와 닿습니다.(1 : 2, 15, 16, 2:5) 기독자는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신분과 정체성) 왕 같은 제사장(직분과 사명)으로 구별되게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거룩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자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그래서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하고 무시와 핍박을 면치 못하나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을 가진 자들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에 거룩함으로 담대하게 살아야 할 것을 베드로 전후 서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익숙해진 현시대에 경건 혹은 거룩함이란 단어가 부담될 것이나 거룩은 “내 아버지께서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예수님의 명령으로(요 17:14-17) 성도로서 피할 수 없는 신앙의 본질인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진리로 거룩의 회복 없이 복음의 회복이 없고(요 8:32) 진정한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복음의 핵심이요 가장 중요한 본질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1907년대 각성 운동 역시 회개와 거듭남과 거룩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부담감으로 베드로서를 대합니다. 베드로전서는 베드로에 의해 순교 직전에 로마에서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D 60-65) 로마 최악의 폭정과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독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합니다. 거룩의 원인과 거룩의 이유와 거룩의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7, 14, 16, 2:9-10)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영광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있으니(21) 아버지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레 19:2) 성도의 거룩한 삶의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성품과 어떻게 사셨는지를 본받으라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 연구와 부지런히 살핀 수련이 필요하며(10) 세상의 은과 금과 영화가 아닌(18, 24) 나그네 인생을 진리로 무장하고 허리띠를 동이고 근신하며(13) 말씀에 지적 동의와 온 영과 혼과 몸으로 의지적 순종이며(22, 마 22:37-40) 작은 것 하나에도 거짓 없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22)
늘 예수쟁이들이 세상에서 욕먹는 가장 큰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 아니요, 신행불일치와 언행불일치인 위선과 이중적인 삶과 탐욕과 독선과 배타적인 비사회적이며 공익성을 잃어버린 것에 있다 합니다. 130년 전 이 땅을 찾는 선교사님들이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사는 복음적인 신앙과 청교도적인 경건의 신앙을 전수해 줌으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음을 자타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신앙과 경건의 삶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해 주어야 할 사명이 현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하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내가 왜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인지를 절절히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그네 삶일지라도 말씀으로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믿음과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형제를 진실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김유수 목사
<광주 월광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