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785-1865)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의 천재적인 기능을 가졌다. 5세 때에 부친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7세 때에 오르간을 배웠으며, 9세 때에 교회에서 정식으로 오르간 연주를 하였다. 그는 독일인으로 프랑스와 가장 가까운 접경지대에서 성장했으며 부친의 뒤를 이은 신학자요, 철학자요, 음악가이다. 그는 20세기의 세계적인 인물로 24세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목사로 전통이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으며, 파이프오르간 연주자로서 권위자이며 동시에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하는 데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26세에 아프리카에 대한 선교의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가복음 8장 3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는 말씀이 그의 신앙과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가 26세 때에 아프리카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되어야 의술로 그들의 육신의 생명을 돌보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일부러 의사가 되었다. 그는 특히 의사 중에서도 열대지방의 의사로서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학교수직, 저술가로서 얻는 수입, 음악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를 찾아갔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60년 즉 평생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프리카의 빈민들을 위하여 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그리고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 그가 복음을 전하고 의료봉사를 하면서 철학적 사색과 연구를 계속하여 저서를 많이 남겼고 유럽을 방문했을 때에 여전히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관객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생명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이론을 주장하기 보다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친히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어서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리고 생활로 친히 보여주셨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함으로 더 많은 것을 남겼다”고 진실을 고백하였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