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길에서 대화가 없어도 한국인임을 알아보는 표시로 ‘빨리빨리, 얼른얼른’이란 말이 있다. 무사분주(無事奔走). 늘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자에게 「장자」(莊子)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장자(莊子)가 살았던 시대는 약 2500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중반기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다. 초기 춘추(春秋) 시대엔 100개 이상의 나라가 있었지만 전국(戰國) 시대엔 7개 국가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진(秦)나라로 통일되었다. 각 지방의 제후국 임금들은 힘으로 천하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백성들은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서 죽어갔다. 장자는 이런 시대에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제후국 임금들이 널리 인재를 구함에 따라 공자(孔子) 묵자(墨子) 등 많은 이들이 제자를 거느리고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고담준론을 나누었다. 이때를 가리켜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라고 한다. 여기서의 ‘자(子)’는 선생님을 ‘가(家)’는 학파를 가리킨다. 하지만 장자는 유세(遊說)를 하지 않았다. 대신 한 발짝 물러나서 현실 세계보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이상 세계’를 꿈꾸었다. 온 세상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싶었다. 「장자」는 원래 52편이었는데 지금은 진(秦)나라 때 곽상(郭象)이 주석을 붙여 정리한 33편(내편 7, 외편 15, 잡편 11)만 남아 있다. 사마천은 원래 장자가 10만 자의 글을 남겼다고 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7만 자를 넘지 않는다. 「장자」 내 편은 하늘을 나는 붕새 이야기로 시작된다. 북쪽 나라에 온몸의 길이가 수천리나 되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어느날 변신해 ‘붕’이란 새가 된다. 다소 황당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장자는 자기의 생각을 산문으로 썼는데 그것을 ‘우언’, ‘중언’, ‘치언’이라 한다. ① ‘우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의 입을 빌려서 하는 것이니, 동물과 식물을 등장시켜 ‘이솝우화’처럼 쓴 것이다. ② ‘중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옛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이다. 당대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유교)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③ ‘치언’은 그때그때 당한 형편과 처지에 대한 임기응변을 가리킨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장자의 우언들을 통해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우리들의 생각을 풀어주고 싶다.
이제 「장자」의 글을 몇 개 맛보기로 하자. ① “아아! 사물이란 본래 서로 해를 끼치며, 이로움과 해로움은 서로를 불러드리는 것이다.”(噫! 物固物累, 二類召也). ② 손을 트지 않게 하는 비방은 하나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유명한 군주가 되고,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세탁업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곧 그 비방의 쓰임새가 달랐기 때문이다.(能不龜手一也, 或以封, 或不免於, 則所用之異也) ③ 임금이 그의 친구 안불의를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이 원숭이는 그 재주를 자랑하며 자신의 날램을 믿고 오만하게 굴다가 죽고 말았네. 이것을 경계해야 하네. 아아, 그대들도 잘난 얼굴을 하고 남에게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되네”(王顧謂其友顔不疑曰 之狙也, 伐其巧, 恃其便以敖予, 以至此也!) ④ 진나라 임금이 병이 나서 의원(의사)을 불렀고.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짜주는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내렸다. 치질 걸린 데를 핥는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내렸다. 치료하는 방법이 천할 수록 그에게 내리는 수레는 더욱 많았다. “당신은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고쳐주었단 말인가? 어쩌면 그렇게 많은 수레를 받았나? 어서 썩 물러가라!” 부정 축재한 신하를 비유를 들어 간접적으로 꾸짖고 내쫓는 기술이다. 윗물이 맑지 못하면 아랫물이 깨끗할 수 없다(上濁下不淨). 우리나라 현실도 마찬가지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