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티샤 베아브 (Tisha be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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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필자는 이스라엘에 있는 히브리대학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지낸 일이 있었다. 7월 초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얼마 동안 대학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그달 말 어느 날, 다른 날과 같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런데 지나다니는 학생도 없고, 온 캠퍼스가 정적에 싸여있었다. 교내 식당을 가보니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안식일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학생이 있어 그에게 물었다. “티샤 베아브!” 한마디 하고 갈 길을 간다. 티샤 베아브? 아, 아브달 9일!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애도하며 기억하는 날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슬픈 날이요, 금식하며 지내는 날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서 파괴된 것을 히브리어로 ‘훌반(Hurban)’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훌반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바벨론 군대가 ‘솔로몬 성전’을 파괴한 것이요, 두 번째는 로마제국의 군대가 ‘두 번째 성전’을 파괴한 것이다. 첫 번째 훌반에 관하여는 구약 열왕기와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훌반의 날짜가 약간 차이가 있다. 열왕기 기록에는 5월(=아브달) 7일이라고 했고 (왕하 25:8), 예레미야서에는 5월(=아브달) 10일이라고 기록했다 (렘 52:12). 이 며칠간의 시차는 별로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입성하여 며칠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을 초토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고, 예루살렘이 불에 타서 초토화되는데 며칠이 걸렸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첫 번째 훌반은 아브달 7일에서 10일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히브리 월력은 달마다 이름이 있다. 아브달은 다섯 번째 달이고, 우리들의 월력으로는 7~8월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기 70년 로마 군대가 두 번째 성전을 파괴한 날도 놀랍게도 ‘아브달 9일’이다. 첫 번째 훌반과 두 번째 훌반의 날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아브달 9일’을 티샤 베아브라고 부르며 모든 일을 중단하고 금식하면서 구약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정적 가운데 지낸다. (티샤=9(일) 베=in 아브달)

‘훌반’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한 전통이 유대인들에게 생겨났다. 그것은 그들이 사는 집이나 방의 작은 일부분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실의 벽지나 페인트를 칠할 때 다 바르거나 칠하지 않고, 한쪽 귀퉁이 부분을 미완성의 상태로 그대로 둔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파괴되었는데 자기들은 완성된 집에서 살 수 없다는 뜻도 있고,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의미도 있다.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한 두 번째 ‘훌반’은 유대인들에게는 감내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유대인에게 정신적, 신앙적 든든한 지주(支柱)였다. 넓은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성전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정체성에 크나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성전이 불에 타 소실되어 파괴된 것이다. 로마제국의 지배하에서 성전이 다시 재건될 전망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절박한 위기 상황을 놀라운 방법으로 극복해 나갔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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