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중국의 고서에는 이런 글이 있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포위되는 바람에 곤궁한 처지에 몰려 명아주 국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이레 동안 쌀 한 톨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공자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안연이 어디선가 쌀을 구해 와서 밥을 지었다. 밥이 거의 다 지어질 무렵 잠에서 깬 공자가 언뜻 바라보니 안연이 솥의 밥을 집어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자는 못 본 척했다. 잠시 후 밥이 다 지어지자 안연은 밥상을 차려 공자에게 올렸다.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방금 꿈속에서 돌아가신 임금을 보았다. 먼저 제사를 올리고 나서 먹자꾸나.” 이에 안연이 말했다. “안 됩니다. 아까 재티가 솥 안에 떨어졌는데 음식을 버리는 일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어 제가 재티가 떨어진 부분을 걷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한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믿을 것은 눈이지만 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의지할 것은 마음이지만 마음도 의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구나. 너희들은 기억해 두어라.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본래 쉽지 않은 법이다.”
공자는 안연이 밥을 집어먹는 모습을 얼핏 보고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먼저 배를 채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고 불쾌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공자는 안연의 행동이 어떤 연유에서 빚어진 것인가를 알아보고자 먼저 제사를 올리고 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제사에 쓰는 음식은 사람이 먼저 먹어서는 안 되므로 안연이 밥을 먹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연유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엿본 것이었다.
그 결과 안연이 먼저 밥을 집어먹는 것은 제 배고픔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 잿가루가 떨어진 음식을 버리기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임을 알게 됐다. 공자는 이 기회를 통해 제자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고 의심나는 대로 속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람이 아무리 외모가 초라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무시하고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일부분의 모습만으로 또는 약간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체적인 맥락과 연유에 따라 그것을 얼마든지 그 반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연세가 지긋한 어떤 분이 병원 사무실을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왔다. 신사답거나 자세가 반듯하지도 않았고 한여름이었는데 고무신을 신고 허름한 남방과 해어진 바지 차림이었다. 직원들은 그분에게 방문의 이유를 물었고 그는 기쁨을, 빛을, 소망을 주러 왔노라고만 하였다. 직원들은 더 의아스러워 무슨 일인지 알고자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내가 나가서 그분을 내 사무실에 정중하게 모시고 들어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잠시 묵상기도를 하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 앞에 내어 놓았다. 그는 “작지만 이것으로 한 영혼이라도 빛을 찾아 주십시오”라고 했다.
나는 내 사무실을 찾은 고마움과 그의 정성이 감사해서 그것을 놓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난 후, 조심스레 그분의 신상을 여쭤보니, 그는 M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었고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었다. 그분은 매우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었다. 언젠가 그분이 섬기시는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가게 됐을 때 다시 반갑게 재회하였다.
성서에도 야고보는 절대로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실수하기가 쉽다. 그리고 그 사람의 외모로 잘못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어떤 사람의 행동에 의심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미리 단정하고 화를 내거나 꾸짖어서는 안 되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을 외모로 예단하는 것은 자칫 민망한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먼저 적당한 기회를 만들어 그 실상과 연유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잘못된 점을 꾸짖거나 내 감정을 드러내도 결코 늦지 않다. 상대방의 좋은 면을 기꺼이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면은 슬기롭게 지적하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큰 사람의 도리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