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국 대한민국은 춘원을 용서해 줘야 한다. 한 세기가 지났다. 지난 세월에 언제까지 족쇄를 채울 셈인가?
과거는 이제 묻어두고 발전적인 미래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 현대문학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젠 춘원의 문학은 정치적, 사상적 이념을 떠난, 순수한 문학성 별개의 개체로 평가되어야 한다.
춘원연구학회 회장인 아주대 송현호 교수는 오늘도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춘원이 남긴 문학 유산을 친일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문학연구에 정치적 논리나 진영 논리가 개입하면 객관적 연구가 진척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제는 춘원의 순수한 문학성만은 인정되는 미래 지향적인, 현명한 결단의 조치가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또한 춘원의 막내 딸 이정화 교수의 살아 생전의 꿈이 있다. 그것은 옛날 아버지가 말년까지 집필하며 막내 딸과 함께 살았던, 남양주 ‘사릉’집을 복원해서 그 자리에 아버지 춘원의 ‘문화원’을 짓는 일이다.
그러나 이 꿈마저 이 나라 좌파 역사시민단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아직까지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이 나라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가슴에 맺히면서, 필자로 하여금 춘원의 소설을 쓰게 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 춘원에 관한 한(恨)스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역사적 재조명으로 춘원이 자신의 영달을 떠나, 막판에 ‘왜 친일로 변절했나’하는 그 진실을 정말 알아내고 싶었다.
처음에 필자는 여러모로 많이 망설였다. 춘원이 워낙 큰 산(山)이었기 때문이다.
58년의 생을 살아온 춘원의 일대기를 한 편의 짧은 소설로 함축시키면서 그의 진심을 알아내는 일은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역사적 팩트를 놓고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춘원의 시대적 줄거리를 정리해 가면서, 아주 심플, 단막극처럼, 그의 심정적 진심을 분석해 가면서, 짧은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모든 독자가 흥미를 갖고 쉽게,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작품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춘원은 이 소설에서 육촌 ‘운허’스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내가 왜 친일을 했는가에 대한 나의 진심은, 먼 훗날 이 나라 역사가 제대로 심판해 줄 것이다”라고.
필자의 바램은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춘원에 대한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알게 하고, 일제 강점기에 춘원이 개인의 영달을 떠나, 왜 친일을 했는가에 대한 그의 진심을 독자들이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는데, 이 소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춘원은 이 땅에서의 말년에 남양주 ‘사릉’집에서 밤마다 차가운 돌베개를 베며 어린 딸과 함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살았다. 왜 반성은 없었다고만, 춘원을 몰아 붙이는가. 자신이 풍금을 치고 어린 딸이 찬송가를 부를 때,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기회에 한국장로신문 많은 독자들이 연재하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이제는 여러분이 공정한 심판자로, 춘원을 진정 이해하고, 심판하고, 응원해 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시길 소망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풍금을 치고’ 춘원 이광수의 실록 장편소설을 연재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내어 주신, 한국장로신문사의 유호귀 사장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