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회 안 나오는 교인들의 시대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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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을 이기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

맥추절은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3대 절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나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1년에 세 번이야 쉽지 싶지만 하나님께서 매년 세 번씩 하나님 앞에 얼굴을 보이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숫자적 의미가 아니다. 

세 번의 절기는 1년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을 의미한다. 

비록 몸은 하나님 앞에 세 번 나올지라도 1년의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속에서 온전한 감사를 고백하며 주 안에서 살아가라는 의미인 것이다. 

세 번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그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와야 했다. 생업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그들이 집을 떠나 있는 사이 그들의 소유는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까? 그들은 불안했을 것이다. 

“생업을 내려놓아 발생되는 손실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이렇게 다 드리면 나는 뭘 먹고 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책임진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한다. 왜 믿지 못하는가? 더 믿을 만한 것을 더 믿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맥추절을 지키라(출23:16)는 말씀을 받을 때는 광야 생활을 하던 때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먹을 수 있었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꿈처럼 그리워하며 불평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두게 되면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신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당장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도 없다.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주님은 아직 심지도 않은 그곳에서 거둘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 현재만을 이야기하심이 아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은 것, 미래를 바라보시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은혜를 선취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숱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 땅은 애굽의 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씨를 뿌리자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곡식을 자라게 하신다. 그리고 땅에는 익은 곡식으로 출렁인다. 밭에 곡식들을 추수하며 그들은 무엇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저 광야에서 이 가나안 땅의 추수를 약속하셨다. 첫 열매는 단순히 밭에서 난 첫 번째 소산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계약이다. 

“너희는 나에게 순종하라 그리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너희는 나 여호와만 의지하라 그리하면 저 가나안의 장대한 거인들 멸하고 거대한 성들을 부숴 너희로 그 땅을 정복하게 할 것이다. 너희는 더 이상 쫓겨 다니며 목축을 하지 않고 그 땅에 정착하여 평안히 농사를 질 것이다. 바로 그때 그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거든 그 밭에서 난 첫 열매를 나에게 바쳐라.” 

코로나의 시간을 보내며 1년에 세 번 보기 어려운 교인들이 많아졌다. 대면 예배가 시작되었어도 앞으로도 비대면을 고집하는, 그야말로 교회 안 나오는 교인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아니다. 얼굴만 보이러 나오는 예배를 넘어 어디서든 약속을 믿고 굳게 서서 상황을 이기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이다. 

일상은 계속되지만 영적 삶은 멈춰져 있다면 이제 일상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한 해의 중간에서 뒤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믿음으로 방향을 정해 전진하는 맥추절 감사의 지혜를 배워야겠다. 코로나의 긴 터널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지쳐 주저앉게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임을 깨달으라고 오늘도 나를 오라 부르신다. 

여전히 나를 찾아 부르시는 그 신실하신 주님의 음성 외에 더한 감사가 무엇인가?  

임준형 목사

<삼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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