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파란만장한 58년 인생 스토리 <3>

Google+ LinkedIn Katalk +

이와같이 어느 날 갑자기 해방이 찾아오자, 춘원은 큰 충격을 받고 일체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6촌이 주지로 있는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그러면서 해방직전에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손수 지은 토담집, ‘사흥’에 기거하면서 다시 집필에 들어갔다. 춘원은 이때 이곳에서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를 통해, ‘도산 안창호’를 써냈다. ‘백범일지’도 써냈다. 또 ‘나의 고백’이란 작품도 써냈다.

그러던 중 춘원은 결국 1949년 2월 7일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된다. 문학예술인 제1호로 체포되었고 그는 최후 진술에서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소”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진심은 먼 훗날, 역사가 심판할 것이오”라는 단호한 말로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춘원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고, 3월에 병보석 되고, 8월에 불기소 처분된다. 시간은 춘원을 가만두지 않았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2일 춘원을 북으로 데려가기 위해 북한의 혁명사인 리찬이 총칼을 든 군관을 앞세워 효자동 춘원의 집을 찾아 왔다. 그 길로 춘원은 납북되어 그 해 10월 25일 함경북도 선봉군 ‘만포’에서 그의 지병이 악화되어 병사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것이 춘원에 대한 개괄적인 짧은 인생의 여정이다.

춘원의 親日, 변절의 비밀과 진실

6월의 초여름에 하늘에는 솜털 뭉게 구름이 더 있고 사방에는 연산홍, 부추꽃, 수국, 아카시아 꽃이 어지럽게 피어 있다. 운악산 봉선사 절터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춘원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길목, 넙죽 바위에 걸터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몇 번씩 훔치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주변의 꽃가지를 부드럽게 흔들어 주고 있었다. 지금 춘원은 해방과 더불어 직접 지어 살고 있는 남양주 ‘사릉’집을 떠나 30여 리 떨어진 이곳 운악산(雲岳山) 봉선사(奉先寺)에 오르고 있는 중이다. 봉선사에서 정오를 알리는 예불 쇠북 종소리가 더욱 시장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춘원은 바위위에 내려놓은 배낭 속에서 물병과 찰떡 몇 개를 꺼내 요기를 하기 시작했다.

춘원이 살아오면서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마다 찾아 오르는 곳이 바로 이곳 봉선사이다. 또 이곳은 세상을 피해 조용히 숨어 지낼 수 있는 은신처이기도 했다. 이 절에는 그와 6촌간이며 한 때 젊은 시절, 춘원과 경쟁자였던 운허(耘虛)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운허는 그야말로 노년기 춘원의 의지자이고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는 쉼터인 셈이다. 춘원이 그의 첫 아들을 잃었을 때 한 동안 마음을 달랬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운허 스님은 그러한 춘원을 위해 절 한쪽칸에 방 하나를 마련해 주고 그 방 이름을 ‘다경향(茶輕香)’이라 명명하고 간판을 손수 써 붙여 주기도 했다. 춘원은 땀이 식기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기지못하고 그냥 넙죽 바위위에 벌렁 눕고 말았다.

젊은 시절부터 병약한 춘원의 건강은 늘 문제가 되었다. 신장과 한 쪽 폐가 없는 춘원으로서는 이만큼 잘 버티는 것도 무척 다행한 일이라 늘 생각했다. 누워있는 머리 위 따스한 초여름의 햇살 사이로 솜털구름이 계속 둥실 둥실 떠 가고 있었다. 그 사이 사이마다 푸른 수의를 걸치고 차가운 수갑을 차고 법정에 끌려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어름어름 보였다. 방청석 여기저기서 민족의 반역자, 매국노 친일 변절자 이광수를 처단하라며 울부짖는 사람들의 험악한 모습이 안경안에 가득 몰려들고 있었다.

“수형번호 675번!” 번호를 크게 불러대는 반민특위(反民特委) 특별부 검사의 목소리가 재판정을 쩌렁쩌렁 오늘도 울리고 있었다. “네!” “이름을 대시오” “이광수입니다” 이어 차례로 최남선, 노천명, 최린 등이 모기 소리만큼 관등 성명을 대고 있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며 재판을 받았던 지난날 부끄러운 그때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떠오르며 오늘도 춘원을 괴롭히고 있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