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가 심상치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탈코로나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줄었다. 이에 맞춰 질병 당국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전면 해제했다. 서민 경제활동의 장벽이 되었던 규제도 풀렸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변종 코로나의 위협은 상상을 초월했다.
혹자는 인구 백만 명당 감염율이 세계 1위라는 말도 한다. 방역 성공 국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다. 감염자 누계도 급격하게 상승 중이다. 질병본부는 8월 26일자 기준으로 2천280만2,985명이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4%가 감염된 셈이다.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다시 지난 2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팽배하다. 지나온 시간이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단순히 모임이나 여가활동의 제약에 따른 볼멘소리가 아니다. 코로나 여파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협을 경험해보았다면 감히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 복음의 사명으로 어렵게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문을 닫는 곳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전도와 선교가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예배를 문화 활동으로 이해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의 주의 주장이 넘쳐났다. 그들은 방역지침에 따라 교회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교회들도 여기에 동참하면서, 결국 다수 교회들이 여론과 방역 정책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한번 무너진 교회는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 이후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코로나를 질병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의 암흑기이자 영적 쇠퇴를 불러온 거대한 어둠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개교회가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기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이제 총회가 나서야 한다.
다행히도 107회 총회는 “복음의 사람, 예배자로 살게 하소서!(시 50:5, 롬 12:1)”를 주제로 열린다. 감염병의 시대에 교회가 무너진 것은 시스템이나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예배자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한국교회의 잘못에 있지 않았을까?
총회가 107회 주제로 복음의 사람, 예배자를 중심 단어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주제에 따른 사업이 제대로 잘 펼쳐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 힘은 9월 첫 주 총회 주일에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회는 2001년 86회 총회에서 총회주일을 제정했다. 총회가 제정한 주일은 33개에 이른다. 총회주일을 제외하고 상임부나 위원회와 관련 있는 제정 주일이다.
총회주일이 제정된 이후 총회는 급격하게 안정되어 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국교회가 봉헌한 예물이 총회를 반석 위에 세우는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회가 코로나 여파에도 사역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총회를 향한 사랑으로 지켜낸 총회 주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곧 총회 주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도전 앞에 서 있다. 1907년 9월 17일 독노회 조직, 그리고 5년 후인 1912년 9월 1일 총회를 조직했을 그때처럼 새 시대를 열어갈 기로에 서 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이 불러온 대각성이 독노회 조직을 가능하게 했고, 빼앗긴 나라에 한줄기 빛으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총회가 조직됐다.
이번 107회기 총회도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교회가 열어가기 위한 시험대이다. 존립과 존망의 기로에 있을 때 회개운동으로 나라와 민족을 살렸던 것처럼, 복음의 사람으로 예배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넘쳐날 때에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 첫발은 총회 주일이다.
전국 69개 노회, 9,400여 교회, 236만 성도가 함께 나서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성도와 교회가 힘을 모으자. 노회와 총회에 보내준 힘으로 지혜를 더한다면 복음의 새 역사는 복음의 사람들과 예배자들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채영남 목사
<100회기 총회장역임, 본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