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참된 시민의 올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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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미국의 서부활극이 온통 영화계를 휩쓸었다. 사회가 아직은 정돈되지 못했기에 영화를 통해 올바른 사회정의를 시행하려는 정책에 편승해, ‘정의’를 보여주는 사회교육으로 영화만한 것이 없다고 여긴,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양산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여겨진다. 따라서 영화는 평화스럽지만 나약한 마을에 악당이 출몰해서 선량한 시민들을 착취하다가, ‘처음에는 우세한 듯 했지만 결국은 선한 힘에 굴복한다’는 뻔한 내용이지만 세파에 힘들었던 소시민에게 힘을 주면서, 나도 정의를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는 다짐을 주는 효과도 있는 교육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 서부개척시대에는 아직 공권력이 완전하지 못했기에, 영화의 배경에는 나를 해치는 악당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나이나 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사실이었기에 여기서 그들이 주장하는 ‘시민의 권리’가 발생했다. 

즉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책임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져야하지만, 개인 각자도 때로는 응분의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물론 미국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명시되어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많은 국민들이 지키는 권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한편으로는 지켜야할 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있다. 이를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으며, 때로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는 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살 때 하루는 저녁에 집을 가는데, 경찰차가 몇대 와 있고 얼마 안돼 어떤 사람이 경찰에 체포돼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침 옆집에 사는 백인할머니가 있어 사정을 물어보니, 얼마 전에 총소리가 나면서 일어난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 할머니가 총을 들고 있기에 쳐다보니, ‘만일의 경우를 위해 예비로 들고 나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할머니는 얼마 전에도 이민 온지 얼마 안돼 미국법을 잘 알지 못해 14살 미만의 아이들을 집에 두고 부부가 함께 일하러 나갔던 한국인 부부를 고발해서 난리를 치렀던 일이 있는 조금은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법을 지켜야한다는 정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삐뚤어진 행동을 많이 하기에 심지어는 중학생 같은 아이들이 골목에 모여서 담배를 피더라도 주의를 주기는 커녕 못마땅한 눈초리만 보내면서 그 자리를 피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따뜻한 인정이 있어 지난번 장마에도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곤경에 처한 이웃들을 구한 미담을 접하면서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하게도 된다. 

더욱이 얼마 전에 맥주를 싣고 달리던 트럭이 좌회전을 하다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엄청난 양의 맥주를 길에 떨어트리면서 커다란 혼란을 야기할 뻔 했으나, 마침 이를 본 주위의 사람들 수십 명이 달려와 깨진 병을 비롯해 쓰레기들을 순식간에 깨끗하게 치웠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환호성이 절로 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질서있고 평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든든한 공권력이 유지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거기에 덧붙여 우리 각자가 바르게 살아가는 참된 시민의 올바른 자세를 함양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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