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근본이 될 삶은 언제나 근면이 아닐까? 부지런히 땀 흘리지 아니한 일은 결코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근면은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D. 퀸조는 말했다. 틀림이 없는 말이다. 물론 근면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겠지만 대부분 성공은 하는 일 그 자체의 결과일 뿐이기에 ‘근면은 성공의 어머니이자 인생의 어머니다’라고 덧붙였으면 어떨까. 성공은 근면의 정신에서 이뤄지고 그것은 인생의 근본을 이룬다. 그렇다. 근면은 과연 인생을 활기차게, 윤기 나는 삶으로 이끌어 가는 어머니다.
어머니 없이는 온전한 생명을 이룰 수 없다. 요즘 난자(卵子)·정자(精子) 은행에서 돈 주고 구입해 교합시킬 때 한 생명이 탄생되는데 어머니의 태반처럼 안전한 보금자리는 세상에서 어느 곳도 없다. 진실로 창조주는 생명의 영력이요, 어머니는 사랑의 터전이다.
사랑의 터전 없이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 이렇게 존귀한 어머니를 근면에 비유했으니 그것 없이는 인생이 존재할 수 없다. 행복의 근원도 근면 없이 이루어질까?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친다. 이러한 삶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선인들의 삶을 고시조 두 수에서 살펴보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르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양사언(楊士彦))
샛별 지자 종달이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선정 옷이 젖다 관계하랴. (이명한(李明漢))
양사언의 시조 중, 중장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르리 없건만은’은 근면과 집념에 찬 땀방울이요 또 이명한의 시조를 보면 전체가 근면의 삶, 자세를 말함이다. 특히 종장의 ‘아이야, 시절이 좋을선정 옷이 젖다 관계하랴’는 무엇을 의미할까. 근면은 참으로 기쁨의 삶을 낳을 뿐이리니 행복한 삶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또 영국의 속담을 보자. “신은 부지런한 사람을 도와준다.”(God helps the early riser)라고 했다. 부지런함은 하나님도 도와준다는 뜻이다.
필자는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시골 아낙네들에게서 느낀 바 있다. 그들은 비록 돈이 없고 남들처럼 배운 바가 없지만 순수한 인간미는 따뜻한 정(情)으로, 근면성으로 다져진 삶이라서 범할 수 없는 정신적 향기가 있다. 이것이 그들이 쌓아 올린 그윽한 교양의 세계요, 가치다. 그들과 10분간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인정(人情)이 넘치는 소박함을 느낄 수 있고 이슬방울처럼 순수함을 느낀다. 참으로 믿음직한 인간미가 샘물처럼 자연스럽게 솟아 흘러나온다. 그들을 대하고 있으면 저절로 행복감을 느끼는데 이것이 정신적 교양이요, 삶의 세계다.
교양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학벌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물질이 풍부해도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왜 그럴까? 모래 위에 지은 화려한 집과 같아서 항상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같이 땅을 일궈 알곡을 수확하는 삶이다. 땅을 깊숙이 갈아 굵은 흙덩이를 곱게 부수어 이랑을 짓고 그곳에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고 잡초를 뽑아낸다. 그리고는 물이 부족하면 물을 주고 거름이 부족하면 거름을 주면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농촌의 이러한 일들은 그들의 생업이요, 삶 그 자체다.
이렇게 힘써 농사에 전념하는 동안 굵은 흙덩이가 고운 이랑이 되듯 마음도 부드럽게 다듬은 인생일 것이다. 그 이랑에 싹이 튼 뒤에는 부지런히 김을 매는데 자신의 거칠어진 마음도 고운 심성으로 무의식 중에 가꾸어간다. 그 사이에 좋은 인성과 심성을 쌓아 교양있는 인간으로 이루어진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인가. 그러니 땀방울로 이뤄낸 근본정신은 그윽한 보람이요, 가치일 뿐 아니라 진정 행복의 터전이다. 이를 다 함께 깊이 생각해 보자.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