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유 없이 살 수 없다. 자유는 공기와도 같다.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전쟁이 더욱 잦았다. 전쟁으로 인해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승전국에서 노예로 삼아 인권을 유린하면서 임금을 착취하는 일들이 많았다. 한편 빚진 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 채무노예(債務奴)로 삼아 인간들을 주인의 예속 하에 두는 경우도 많았다.
서양중세시대에는 장원제도가 발달했다. 십자군전쟁(1096~1270) 후에는 장원제도가 붕괴되면서, 영주의 예속하에 있던 농노들이 도시로 진출했다. 그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 있다. 그것은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는 것이다.
서양 중세시대 말기에 자크리(Jacquerie)의 난(1358), 왓트 타일러(Wat Tyler)의 난(1381) 등 농민들의 반란이 많이 발생했다. 혼란과 무질서,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마침내 서양근세 초에 이르러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동조하는 절대주의자들이 대두했다. 이들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왕권이 강화되자 17‧18세기에 이르러 영국에서 청교도혁명(1642), 미국독립혁명(1776), 프랑스혁명(1789)이 발생했다. 이중에서 프랑스혁명 때에는 자유‧평등‧박애라는 이념을 부르짖는 현상이 대두했다.
이런 사상이 발생한 배경에는 앙샹 레짐의 반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세적 불평등 사회의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일반 평민의 목소리가 폭발한 것이다. 제3계급인 일반 평민들이 조세를 부담하고 제일 계급 성직자와 제2계급 귀족은 조세를 면제 받는 불평등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의 원인 중에서 신분적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크게 대두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평등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대두한 것이다. 이 당시 지롱드당 편에 서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자코뱅당 편에 서 있는 진보주의자들은 평등주의 사상을 강조했다. 로베스피에르(M.F.M. Robepierre)를 중심한 자코뱅당 사람들에 의해 파리에서만 1,400여 명,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 총살 및 단두대에 처형되는 공포정치가 자행되었다. 결국 테르미도르(Thermidor) 반동이 일어나 주동자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 처형되었다.
이러한 프랑스혁명 때 큰 이슈로 대두한 평등문제는 1848년 엥겔스(F. Engels)와 마르크스(K. Marx)의 공산당선언 이후 공산주의는 빈부격차가 많은 나라들에 들풀처럼 번져나갔다. 그런 영향은 소련의 레닌(V. I. Lenin)과 스탈린(J. Stalin), 중국의 마오쩌둥 등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혁명화 했고, 코민테른(Comintern)이라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분위기를 타고 한반도에까지 밀어닥쳐 오늘날의 남북한 비극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북한은 평등을 남한은 자유를 강조하는 역사적 배경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발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빵 없는 자유도 자유 없는 빵도 비극이다. 아무리 자유가 많다고 하더라도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자유는 허상일 뿐이다. 또한 아무리 평등한 사회라 하더라도 굶주림과 억압 속에 살아간다면, 이것도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고 국민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굶주리고 억압 속에 인권이 유린당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는 국가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북한은 그런 책임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남한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아직도 소외계층이 많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자유(自由)와 평등(平等)을 공유(共有)하면서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