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정부가 보장해주려는 것이다. 1948년 UN이 제정 공표한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22조)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헌법 34조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34조 1항)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가진다”(34조 2항)고 규정하고 있으며, 정부는 저소득층이나 노약자, 장애인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복지 급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구약 신명기에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객, 고아, 과부, 레위인)을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제도가 명기되어 있다. 고대 사회법으로서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약자 보호법’이다. 신명기 약자 보호법의 대강령은 신명기 15장 10절의 말씀이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하나님) 네게(=이스라엘)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는 인류 사회가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총집합해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도 완전히 풀 수 없는 난제이다. 에덴동산이 회복될 때까지는 완전한 해법이 없을 것이다. 신명기는 경제적 평등과 빈곤의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땅에는 언제나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신명기의 해법은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손을 움켜쥐지만 말고, ‘갖지 못한’ 경제적 약자들에게 손을 펴주라는 것이다. 즉 가진 것을 나누며 모든 사람이 더불어 같이 사는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명기는 구체적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① 구제를 위한 십일조 (신 26:12-15; 14:28-19). 이에 관해서는 지난 회에 상세히 언급했다.
② 추수법 (신 24:19-2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객)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감람나무나 포도를 수확할 때도 다 따지 말고,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고 했다. 레위기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다. (레 19:9-10; 23:22) 농토나 과원을 소유한 사람은 수확할 때 적당히 남겨두어 경제적 약자들과 나누어 먹으라는 말씀이다.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을 때, 룻은 밭에 나가 떨어진 곡식다발과 이삭을 주워 연명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③ 배고픈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포도원이나 밭에 들어가 손으로 따먹는 것이 허락되었다. (신 23:24-25) 배고픈 사람이 허기를 채우는 것을 막지 말라는 규정이다. 그러나 탐심을 내어 그릇에 담거나, 낫으로 베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신약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날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다른 사람의 밀밭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안식일을 범한 것을 문제 삼았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