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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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이렇게 시작되는 성탄절 최고의 찬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1818년 성탄절에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올해는 이 찬송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노래의 작곡자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 1787-1863)는 잘츠부르크 근교의 안스도르프(Arnsdorf)의 초등학교 음악교사였는데, 그 학교는 총 2개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시골학교였다.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그루버가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는지는 문헌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모아 정리하자면, 당시에 그루버는 안스도르프의 이웃 마을인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 있는 성니콜라우스 성당(Kirche St. Nikolaus)에서 풍금반주자와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1818년 성탄절에 교회의 풍금(포지티브: Positiv, 오늘날의 풍금과는 다름)이 고장이 나서 예정된 성탄찬송을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악기에 얹어 부를 새로운 성탄절 노래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 때 성당의 보좌신부였던 조셉 모어(Joseph Franz Mohr, 1792-1848)가 2년 전(1816)에 써두었던 시를 꺼내어 그루버에게 주었고, 모어의 시에 그루버가 기타 반주에 맞춘 새로운 성탄 찬송을 급하게 작곡했다. 이 찬송이 유명해지면서 작곡에 얽힌 더 많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져서 퍼지게 되었다.

그루버는 전문적인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학교교사와 교회 관리 및 반주자의 일을 했다. 그는 첫째와 둘째 부인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 속에서 세 번이나 결혼을 하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첫 부인으로부터 2명의 아이를 얻었고, 그녀가 죽은 후에 20살 연하의 제자였던 두 번째 부인(Maria Breitfuß)과 결혼해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12명의 자녀 중 8명이 어렸을 때 죽게 된다. 

평범한 음악교사였던 그루버에 의해 작곡되어 무명의 성직자였던 모어 신부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1818년 12월 24일 한 시골 교회당에서 불린 이 소박한 찬송이 오늘날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의 노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요한 밤’의 비밀은 소박함과 순수함이다. 그 마음을 가지고 이번 성탄에도 노래를 불러보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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