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삶의 흔적(痕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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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의 꾸중

결혼 3개월 후 6월 어느 날! 시아버님께서 평일인데 춘천에서 약속이 있으셔서 횡성에서 오셨었다. 나는 하루의 수업이 보통 4시간이고 많은 날은 6시간까지 했었다. 시아버님이 오셨던 날도 수업을 마치고 퇴근해서 피곤한 상태였고 임신 3개월이라 입덧이 심해서 힘든 상태였다.

나는 사촌 시누이(원미자)의 담임을 하고 있었다. 시어른들께서 내가 쓸쓸하다고 저녁이면 나의 방에서 숙제도 봐 주라고 같이 있게 했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시누이 숙제를 도와주다가 그만 잠이 들었었다.

그 시절에는 전기가 없어 남폿불이었는데 시누이는 나를 깨우기가 어려워서인지 불을 끄고 잔 것이었다.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문밖에 시어머님께서 서 계시며 ‘나와서 시아버님께 빌어라’ 하시는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일어나 마루에 나가서 소리치시는 아버님 앞에 꿇고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했었다.

시아버님은 만취가 되셔서 이성을 잃으셨던 것 같았다. 친정에서 배우지를 못했다고 하시며 당장 보따리 싸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소리를 치셨다. 나는 계속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며 울고만 있었다. 지켜보시던 어머님이 ‘이제 됐으니 그만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셔서 그제야 나의 방으로 갔다. 사촌 시누이는 모르는 척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나는 친정 부모님을 욕되게 하고, 보따리 싸고 가라는 말씀이 너무도 서러워서 밤새도록 울면서 결혼한 것을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모른다.

다음 날! 나는 수업을 마치고 퇴근해서 시집으로 가기가 정말 싫었다. 그러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을 하고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이제 퇴근하고 오냐?’ 친정 아버님의 소리가 들려서 마루 쪽을 쳐다보니 친정 아버님이 시아버님과 마주 앉으셔서 약주를 드시고 계셨다. 친정 아버님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시아버님께서 만취가 되셔서 실수하신 것 때문에 친정 아버님을 부르시고 같이 약주를 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친정 아버님께서 내가 눈이 부어있는 것을 보시고 눈치를 채셨던지 ‘딸을 보았으니 이제 가봐야 하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셨다. 나는 대문 밖까지 배웅해 드렸다. ‘잘 있어라’ 하시며 돌아서서 가시던 친정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 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울었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친정 아버님은 내가 자랄 때 자다가 숨소리만 이상해도 깨워서 약을 먹이셨고, 배에다가는 밤이면 배가리개(하라마끼)를 꼭 챙겨 주셨었고, 자라면서 야단도 치신 적이 없으셨고, 그리고 학도병으로 약 1개월 소식이 없을 때도 눈물로 보내셨다고 하며, 나를 시집에 보내놓고는 밤마다 우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시어머님의 가르침

시어머님께서 바느질이나 살림을 잘 가르쳐 주셨다. 단지 식구가 많아 일도 많고, 아이도 돌봐주어야 해서 바느질은 거의 밤에 했었다. 피곤해서인지 눈에 다래끼가 끊일 날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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