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장로 추대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은퇴 후 작은 교회 돕고 노인들 섬기는 일 하고파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가. 자격 없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 그에 걸맞는 삶을 제대로 살아왔는가 돌아보면 부끄러움밖에 없다. 찬양의 가사처럼 지나간 모든 것이 은혜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는 사람이다.”
이준삼 장로는 12월 18일 오후 3시 성내동교회(강성국 목사 시무)에서 원로장로로 추대된다. 마흔 살에 장립받아 30년6개월을 시무했다. 그동안 교회뿐 아니라 남선교회전국연합회와 교단 총회에서도 다양한 역할로 힘을 쏟았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였다고 이 장로는 고백한다.
경남 사천 시골에서 5남2녀 중 셋째로 나고 자란 이준삼 장로는 어려서 너무 가난해 제대로 먹질 못해 키가 덜 자랐다고 농을 하며 웃었다. 그의 아버지는 불공을 드려 태어난 5대 독자셨다. 그만큼 집안은 기독교와 거리가 멀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친구 따라 교회에 가서 빵을 얻어먹었다. 남은 빵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집에 돌아와 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여름수련회에 가서 성령을 체험했다. 부모님께서는 예수 귀신이 들어왔다며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집에서 쫓겨나 천마산 기도원에 들어가 열흘 동안 기도하면서 다시 한번 뜨겁게 성령을 체험했고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집에 돌아가니 신기하게도 더 이상 신앙생활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이준삼 장로는 30여 년 전 장립받던 당시 LG산전 관리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직장생활은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데 여러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장립받는 것을 고민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예전엔 직장생활에 불건전한 접대문화가 횡행했고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실적이나 업무에 불이익이 있었어요. 난 신앙인으로 가책을 느끼던 차에 장로 선임은 더욱 부담스러워 장로가 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에 의지했고, 이후 장로로 시무하면서도 여러 가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동력은 어려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 앙생활을 이어왔던 체험 덕분이었습니다.”
성내동교회에는 결혼하던 즈음부터 출석하기 시작했다. 부인 허영숙 권사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반주자로 봉사해온 신실한 신앙인이었는데, 작은 교회를 도와야 한다며 성내동교회로 이준삼 장로를 이끌었다. 결혼 당시 이 장로는 공군장교였다. 몇 달에 한 번씩 이사를 했을 정도로 가난한 신혼살림에 허 권사는 동네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교회에서 40년 가까이 반 주자로 또 지휘자로 봉사했고, 지금도 교회 아가페찬양대에서 지휘를 한다. 전역 후 LG산전에 입사하면서 살림이 조금 펴지는가 했지만 이후로도 돈은 많이 벌기도 했고 잃기도 했다. 이 장로는 “주시는 것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것도 하나님”이라며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아내 허영숙 권사의 인내와 지혜 덕분이 크다.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나를 돕는 나의 가장 든든한 지 원군이다”라고 말했다.
성내동교회는 4년 전이던 2018년 3월, 7층 규모의 비전센터를 준공했다. 이 장로는 준공감사예배를 드리면서 감격을 느꼈다고 했다. 천막교회에서 시작한 성내동교회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예배당을 마련한 것, 그간의 고락을 함께 한 교우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덧 청년은 원로장로가 됐다. 교회의 성장을 이끄신 주님은 이준삼 장로의 오늘을 인도하셨다.
평신도 운동에도 오랜 시간 헌신
이준삼 장로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10여 년 임원으로 활동하고 회장까지 역임했다. 교회 봉사를 너머 교단 연합단체로까지 활동의 지경을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성내동교회 목회자, 당회원들의 보이지 않는 기도와 협력 덕분이었다.
“김용덕 원로장로님(금호중앙교회)과 홍전표 원로장로님(성내동교회)께서 연합단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셨지요. 사실 작은 교회 교인으로서 연합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기는 어려워요. 김병렬 원로목사님과 강성국 위임목사님, 그리고 당회원들의 이해와 배려,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10년 간 진행했던 ‘생명‧정의‧평화(L‧J‧P) 운동’ 위원장을 맡아 마무리되던 해에 제가 남선교회전국연합회 73회기 총회에서 회장에 선출돼 ‘미션153운동’을 시작했어요. 교회에서 목사, 장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실 교회를 세우고 성장을 이끄는 주역은 평신도들이잖아요. 남성 평신도들의 연합단체인 남선교회전국연합회가 한국교회의 부흥을 견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미션153운동은 (1)1년간 10만 명 전도를 목표로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에 회원 100만 명 달성하자 (5)남선교회지연합회 활성화를 위해 각 지연합회에서 5명 이상을 전국대회에 참여시키 자 (3)노인복지선교‧이주민선교‧학원선교, 이 세 분야 선교에 더욱 집중하자는 운동으로 이준삼 장로는 회장 임기 동안 이 운동에 열과 성을 다했다. 또 남선교회전국연합회가 꾸준히 해오고 있던 의료선교 사역 30주년을 맞아 의료선교에 더욱 중점을 두었고, 이전에는 육군 장병들을 대상으로만 진행했던 진중세례식을 이준삼 장로가 회장일 때 해군과 공군에게까지 확대했다. 이러한 공로로 이준삼 장로는 세계선교공동체(WMC) 의료선교 감사표창, 남선교회전국연합회로부터 20년 근속표창과 봉사대상, L‧J‧P운동 공로대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최초로 총회장이 수여하는 남선교회 평신도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는 평신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평신도교육대학원에서 20여 년 봉사하고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다.
총회에서도 유지재단 이사, 감사위원, 재정부와 사회봉사부 실행위원, 선거관리 위원, 역사위원회 회계, 정책기구개혁위원회 회계 등을 역임했고,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목사 장로 사이의 피스 메이커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으나 단일화 실패로 뜻을 접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평양에 봉수교회를 재건축한 일이다. 이 장로는 일찍부터 중국에 교회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고 돕고 있었다. 이준삼 장로는 평양 봉수교회 재건축 과정에서 회계를 맡았고 2008년 헌당식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원로 추대와 동시에 시무장로로서는 은퇴하는 것이지만 이준삼 장로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장로로서 교회를 30여 년 섬기고, 그동안 연합단체 활동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싶어요. 성경에도 작은 자를 도우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거창하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교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기도하고 있어요. 또 언젠가 경로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감동이 마음에 남아 있어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지상명령에 따라 이 장로는 대북 후원단체인 (사)기쁜소식을 통해 북한 땅을 돕는 일도 지속할 계획이다.
“언젠가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노년에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후로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길을 열어 달라고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난 나를 택하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남은 내 삶을 또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한지은 기자
▲이준삼 장로는 허영숙 권사와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사진은 딸의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