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생의 불행을 넘어 영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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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8:1, 5-6

불행이란 무엇인가? 불행은 곧 절망이다. 절망은 무엇인가? 삶에서 희망이 끊어지는 것이 절망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고 했다. 성경에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진 내용이 수없이 많다. 가령, 시각장애인 거지 바디매오는 구걸해서 먹고사는 절망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므로 예수님을 만나서 희망의 삶으로 바뀌었다. 또 가나안 여인은 딸이 귀신 들려 고통당하자 예수님을 찾아가서 딸을 고쳐 달라고 몸부림쳤다. 예수님은 여인을 개 취급했지만 여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매달림으로써 예수님은 “네 믿음이 딸을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며 기적으로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끊어진 것을 이어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끊어진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끊어진 것, 사람과 자연 사이에 끊어진 것을 이어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시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이며 휴머니스트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세상만사 모든 역사와 운명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이다. 불행이 왔을 때 인내와 용기로 도전한다면 불행은 가고 인간에게 달콤한 행복과 평안과 기쁨이 손에 쥐어진다”라고 강조했다. 불행과 절망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이다. 생명을 걸고 도전하는 용기는 불행을 희망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뀌게 하고, 결국 절망과 불행이 사라지고 영광이 온다.

어느 날 행복의 여신이 어떤 부인을 찾아갔다. 온 집안에 행복의 태양이 가득 찼다. 얼마 후에 행복의 여신은 그곳을 떠나겠다고 했다. 부인이 한사코 말리자 행복의 여신은 “나는 한곳에 오래 있을 수 없는 몸입니다”라고 하고는 홀연히 떠나 버렸다. 얼마 후에 불행의 여신이 찾아왔다. 부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여신을 거부했다. 불행의 여신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여신이 지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행의 여신이 그 집을 점령했다. 온 집안에는 수심의 검은 기운이 가득 찼다. 얼마 후에 불행의 여신은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집을 떠나 버렸다.

세상만사에는 다 때가 있다.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로 다 때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참고 이겨 내야 한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불행을 쫓아내거나 불행이 끝날 때까지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 38:1)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절망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절망에서 다시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5-6)라는 음성을 들었다.

절망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희망을 복으로 주신다. 우리는 어둡고 캄캄하고 암담한 절망의 현실 앞에 서 있다. 이럴 때, 히스기야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뚫고 나가면, 불행은 가고 절망도 가고, 승리와 행복, 찬란한 영광이 반드시 온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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