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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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 2> 

한국보육원과 김유선 여사 ⑤

“별은 창마다, 마음은 어디로?”라는 메시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확신할 수 있어

“내가 가진 생각이 누이가 가진 생각이라”

 내 마음 속에는 사랑과 번민 함께 자라가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 가리.

저 건너 보이는, 저 건너 보이는 작은 섬까지.

이런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꿈많았던 시절을, 흩어진 친구를 그리며 피난의 애꿎은 심정을 노래에 실어 어디론가 보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 나는 황 선생과 한 지붕 밑에 기거하고 아이들을 위해 일하면서 그를 이해하며 바라다볼 수 있는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신학대학에 재학할 때 우리 아버지에게서 구약학과 히브리어를 배운 아버지의 제자였다.

황 선생의 편지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주었다.

유선 씨가 안계시니까 꼭 빈 집 같습니다. 더구나 아이들도 기다리고, 또 직원도 기다리고 그저 그렇고 그렇습니다.

오늘밤은 유랑아에 대한 소생의 소론(小論)을 피력하려고 하옵는데, 특히 김유선 언니의 청강이 기대되었는데 어그러졌습니다.

그러나 별 것 아니니 아까울 것 없고, 또 제 생각이 그것 다이니 정말 별 것 아닙니다.

단지 김 양은 좀 영구히 이 일에 관계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고, 우리 양아치 팀의 끊임없는 후원자일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여자의 생명(사업의)은 짧습니다. 너무나, 그러나 쉬이 우리의 주변을 떠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꾸준히, 아니 끊임없이 유랑하는 민족의 무리에 섞여 주십시오.

고단하게 다니다 급하게 오지 말고 푹 쉬고 안심하고 돌아오세요.

그럼 안녕.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손을 통해 소년단 복장에 완장을 달아 달라고 내게 보내왔다. 옆에 있던 보영이와 원화가 웃으며 나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50명에 가까운 여자 선생들이 있는데, 하필 네게 이런 일을 부탁하니? 미스터 황 참 웃긴다 얘.

잠시 뒤에 그는 지나가는 길에 우리 있는 곳에 들리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카드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는 내 친구에게 “인생은 과객, 현세는 여관, 나는 도화사”라고 써서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을 그리고 나서는 그 아래쪽에 “별은 창마다, 마음은 어디로?”라고 써놓고 갔다. 내가 친구들을 향해, “이것이 무슨 뜻이니”하고 묻자, 친구는 대답했다.

“얘, 그것도 모르니? 아무에게나 ‘마음’이라는 말 쓰는 것 아니야. 미스터 황이 너를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겠니?”

역시 그 무렵의 일이다. 날짜는 확실히 기억할 수 없으나 그가 보낸 편지로 해서, 나는 그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유선 누이,

행복의 감정이란 언제나 순간이겠기에 지금 내 행복감을 적어 봐야 할 것 같아서 두어 자 씁니다.

난 하루살이같이 이제 얼마 살다가 곧(33세)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늘 긴 생각 긴 계획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행복에 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을 수 있다면 좀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자꾸만 그들(어린이)을 보고는 울었습니다.

유선 누나께만 말이지 내 입장에 서서 지금 이 난관(종교적 감정의 미묘한 대립)을 뚫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외롭고 힘들어요. 더구나 누구에게 다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참았습니다. 그저 훨훨 어디론가 가 버리려고 생각했다가도 아이들 얼굴을 보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어제 아이들이 빵을 받아 먹을 때도 또 어떤 아들 잃은 어머니가 와서 우는 것을 보고 난 어린애처럼 울었어요. 그리고 유선 누이가 그래도 내 속을 알아줄 것만 같아서 다시 웃음으로 위장을 했지요. 실상 누가 어린것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몇 사람이 있겠소? 유선이마저 모른다면 그 누가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겠소.

나는 분명히 내 가슴에 피어오르는 정열적인 감정(유선씨에 대한)을 억누르고, 또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을 유선 누이도 알 거요. 그러나 그것만이 일은 아닐 것이오. 육과 육의 접촉은-썩은 것을 아니 환멸을 낳을 것뿐이나, 일-진리-사랑의 접근은 그래도 참 빛에 가까운, 아니 접근하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이 그대로 누이가 가진 생각이라고 생각될 때 비로소 내 가슴에는 무한한 희망과 행복감이 피어오르는 것이오.

이러한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에라도 외로운 내 동생 하나를 쓰다듬어 줘야겠지만 정말 나는 행복되어서, 불행한 그들 생각이 나서 죽을 지경이야. 그리고 — 이 일(여기가 아니라도 좋아)을 위해 오래 같이 일해요. 응? 시집가지 말고 같이 날 좀 도와주면 안돼? —

프랜시스와 클라라

직원까지 합쳐서 1,000명 가까운 대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사는 눈 많은 생활 속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을 느낄 때, 그보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될텐데 하는 생각에서 내 마음속에는 사랑과 번민이 함께 자라가는 것이었다.

우리 옛날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가난한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클라라라는 여성을 정신적으로만 사랑하고 동지가 되어 같이 일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 보자고도 생각했다.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에 대해 사랑이 자라가는 것이 두려워졌고, 또 클라라가 될 자신도 없어서 그곳을 떠나려고도 했었다.

그 무렵에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Dear Clara,

어젯밤 방송 클라라가 들어 줬으면 했어요. 클라라가 뭐하는 건 내가 꼭 듣고 싶었고.

밤에 잠 못 이루었어요. 왜 그렇게 꿈에서까지 괴롭히는지 두 번을 클라라가 나타났으니 괴로울 밖에!

갈 때마다 책을 보고 있는 걸 보고 퍽 부끄러워했어요. 공부하자고 해놓고 참지 못하는 내 위신이 가엾어요.

클라라도 공부는 못하는 눈치 같아서 내가 미안해요.

‘어린이 연구 강좌’는 차라리 어려운 논문을 읽는 것보다 퍽 유익할 것 같아요. 거기다 우리의 소론(所論)을 붙여서 독특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난 MRA 멤버도 아니야. 그러나 MRA의 세계적 동향을 주시해 봐요. 앞으로 아동들(17세 이상)의 교화(고아 및 부랑아)에는 MRA의 정청이 가장 좋은 한 실험으로 이용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으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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