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복음서를 묵상하던 중에 세례 요한의 사역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던 세례 요한을 가리켜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넉넉하고 부유한 삶을 버리고 유대 광야로 들어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지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선지자로 여겼고 그에게 찾아와 자기 자신들의 죄를 자백했다. 세례 요한은 죄를 자백한 자들을 요단강으로 데리고 가서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세례 요한의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차 오실 주님을 맞이하고 영접하게 하는 행위들이었다.
특별히 주님의 오심을 알리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을 생각하면서 옛날 지체 높은 벼슬아치들이 가마나 말(馬)을 타고 행차할 때 앞서 “쉬~ 물러 꺼라”라고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던 종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종들을 ‘거덜’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조선시대에 사복시라는 관청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냈다.
사복시는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건물 뒤쪽에 있었는데 거기서 거덜이 주로 하는 일은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말똥을 치우는 일을 했고, 때로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가마나 말을 타고 행차할 때 “쉬~ 물러 꺼라”라고 외치면서 그 행차를 돕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 거덜 중에는 그 일에 재미를 느낀 거덜도 있었다. 자기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다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리는 것을 신나게 여기었다. 더 나아가 어떤 거덜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나 된 것처럼 우쭐거리고 거들먹거리면서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거덜도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발길질하고, 치도곤(治盜棍)으로 치는 짓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벼슬 높은 양반들의 행차를 피해 뒷골목으로 지나다녔는데 그 길을 피맛길 또는 피맛골이라고 한다. 오늘날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지는 길이 그 길이라고 한다.
주님께 부름을 받은 목사 장로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외치는 오늘날의 세례 요한이요, 거덜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여 종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대단한 권세나 있는 것처럼 성도들 앞에 횡포나 부리고 우쭐거리며 거들먹거리는 거덜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말에게 먹이 주듯 성도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이고, 말똥 치우듯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섬기는 일에나 힘쓸 일이지 잘난 체를 하고 큰소리를 쳐야 할 일 이겠는가 싶다.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광야에 들어가 나실인의 삶, 청빈한 삶, 의인의 삶을 살았던 세례 요한처럼 살 수는 없을까, 사람들에게 주님을 소개하고 주님 맞을 준비를 시켰던 세례 요한처럼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던 세례 요한처럼 주님만 드러내며 살 수는 없을까 스스로 채근해 본다.
주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셨던 사순절의 계절에 못된 ‘거덜’을 생각하면서 괜히 거들먹거리다가 거덜나지 않을까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히 종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김선우 목사
<흥덕제일교회 / 현, 총회정책기획및기구개혁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