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인사 정책과 이승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섭리 따라 역사의 최종 목적지 새예루살렘을 향해 이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계신다. 각 시대의 전환점에서 새 시대를 세우실 때 옛 시대의 대표적 인물을 끄집어내셔서 그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게 하셔서 그 손으로 자신이 빠져나온 체제를 허물게 하신다.
모세를 보자. 이집트 왕자로 자라난 모세는 그가 왕자로서 속해있던 바로의 체제를 깨고 자기 동족 히브리인들을 출애굽 시키는 사명을 감당했다.
바울을 보자. 그는 히브리 전통과 헬라 전통 양대 산맥에 정통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흠이 없었다. 유대인 중 유대인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었다. 열심으로 말하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체포해 처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유대교를 무너뜨리셨다.
어거스틴을 보자. 그는 사이비 종교 마니교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모친 모니카의 땀과 눈물과 기도를 통해 어거스틴을 되돌리셨고 그의 손으로 마니교를 부수게 하셨다.
루터는 어떠한가. 그는 가톨릭교회 어거스틴수도회 소속 신부였다. 그런 그가 복음을 접하고 오직 믿음으로의 구호로 가톨릭의 아성을 허물어뜨렸다.
이승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배재학당 채플에 안 갈 수 없어서 갔던 그는 자기 같이 훌륭한 불도요 유학자가 일천구백 년 전에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예수 이야기에 휘둘릴 수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한성감옥에서 죽기 직전 부른 예수를 만나고 성령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당시 공식신앙 유교, 민간신앙 불교 샤머니즘 등등 위에 세워진 구한국과는 전혀 다르게 기독교입국론으로 전혀 새로운 체제인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되었다.
2.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은 신앙의 외길
신앙이 변하면 세계관이 변한다. 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학위를 받은 것은 1905년부터 1910년까지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저서 「독립정신」은 아직 한성감옥에 갇혀 있을 때 집필한 것이다. 이승만의 저서들에는 남다른 인사이드 아웃의 직관력이 작용하고 있다. 그의 유학이 또 미국에서의 오랜 외교 독립 투쟁이 그의 경험의 폭을 든든하게 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세계관의 변화는 한성감옥에서 예수를 만나고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로 한결같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가리켜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을 저술한 김인서 목사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정치가는 대개 종교에서 떠나가는데 이 박사는 약관 때 크리스천이 된 뒤에는 감옥에서나 망명 중에서나 신앙을 사수했다. 첫 번 국회도 개회를 기어이 기도로써 했고(*1948. 5. 31), 4.19 다음 주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정동교회에 나가는 데에는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신앙으로 일관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은 국회 개회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로서 진행하게 했고 대통령 선서를 “국민과 하나님 앞에” 하게 했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 교수·현 청교도신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