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신문과 함께해 온 15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길
“신앙의 대를 잇는 믿음의 가정,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평양 강서 고창리에서 태어난 김광식 목 사는 故 김건철 장로의 조부 김응록 장로 를 중심으로 현대식으로 건축한 고창교회 에서 나고 자라 6.25 전쟁으로 월남해 제 주, 부산, 서울을 거쳐 인천제삼교회에 정 착해 24년을 시무했다. 현재 본보 한국장 로신문사에서 ‘예화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 을 700회 이상 연재하고 있는 99세의 김광 식 목사를 본보 50주년을 기념하여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눴다.
15년간 연재해 온 ‘예화 이야기’
“현역 목사로서 시무할 당시에는 예화 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한 김광식 목 사는 어느 날 책을 읽던 중 예화의 매력에 빠졌다. 평생 설교해왔던 원고를 가지고 있 던 김 목사는 모든 원고를 꺼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예화를 30여 편 정도 골라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 한 것이 ‘예화 이야기’의 기초라고 한다. 이 후 신문, 잡지, 책을 읽으며 예화의 소재가 되는 것을 정리해 컴퓨터에 담았다. 이렇게 작성되고 정리된 글들이 ‘예화 이야기’로 쓰여졌고 99세인 지금까지 연재를 지속하 고 있다.
“예화를 고르고 작성하는 일이 어찌나 재밌는지 책이나 잡지, 신문을 읽을 때마다 늘 ‘예화 이야기로 사용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꼭 1-2개 정도의 예화 이야기를 고르곤 했답니다. 예 화를 찾고 정리하는 이 일이 너무나 재미 있어 마치 하나님이 천직으로 주신 일 같아 요.”
신문에 연재를 하면서부터는 약 700자 내외로 글자 수를 조절해야 했기에 어려움 이 많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김 목사는 지 금도 80개 정도의 원고가 컴퓨터에 담겨 있 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원고들을 죽는 날 까지 장로신문사에 사용할 예정이라는 김 광식 목사는 99세의 나이에도 하루에 1-2 시간씩 컴퓨터에 앉아 원고를 작성하고, 어 딜가든 늘 부지런하게 깨알같이 글을 쓴다 고 했다.
5대째 이어진 믿음의 가정
“1.4 후퇴 당시 가족과 헤어져 나와 동생 만 남게 됐다. 그렇게 제주에서 기거할 때 에 기도하는 중 아버지의 기도가 생각이 나 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김 목사는 신학교 재학 중 후암교회에서 사역을 시작 해 16년간 사역했고, 1년간의 안식년 기간 동안 일본에서 공부했다. 이후 인천제삼교 회와 연이 닿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는 생각에 ‘마지막 목회지’로 여기며 제삼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해 24년간 시무했다. 그가 시무하는 동안 제삼교회는 교인이 6 배 가량 늘었으며 사택, 교육관을 짓기도 했다.
증조부·조부·아버지까지 3대가 장로인 가족에서 태어난 김광식 목사는 아버지의 “아들이 목사가 되면 좋겠다”는 기도로 목 사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의 아들 또한 목 사가 되어 캐나나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기도했던 것처럼 아 들에게도 머리에 손을 얹고 목사가 되길 기 도했다는 김광식 목사는 “지금은 아들 김 창일 목사가 현지교회 혹은 한인교회에 담 임목사가 되어 단독목회를 할 수 있길 기도 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 시는 일이니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김광식 목사는 매일 밤 10시가 되면 부인 과 둘이서 가정예배를 드린다. 매일매일 기 도하는 대상을 정해서 기도한다고 한다. 30 개 정도의 기도 제목을 종이에 빼곡히 적 어 요일별로 나누어 기도하고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를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은 죽는 그 날까 지 계속할 것”이라는 김 목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가정예배를 드릴 것을 권하고, 김 목사의 집에 자녀들이 방 문하면 함께 가정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목사들도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도 있 고 안 드리는 가정도 있어요. 제가 목회할 때에 가정예배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늘 강조하고 권했었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 에게 신앙을 가르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처럼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건강한 백수(白壽)
99세의 김광식 목사가 컴퓨터에 앉아 파 일을 작성하고, 주일 예배를 위해 인천 부 평에서 종로5가까지 주마다 이동할 수 있 는 이유는 바로 튼튼한 다리덕분이다.
김 목사는 이북 광석학교에 다니던 시절 평양에서 유명한 왼발 골을 잘 쏘는 유명 한 축구선수였다. 인천에서 목회하는 동안 에는 조기축구회에서 19년 동안 축구를 해 왔다. 인천에 있는 30개의 조기축구회 중 30-50대 대표선수 중 50대 대표선수가 되 어 전국대회에 출전한 전적도 가지고 있다.
“조기축구회에서 우리 제삼교회에 등록 하고 세례받아 집사가 된 사람도 있답니다. 또 한가지 건강 비결이 있다면 오후에 놀이 터에서 10분씩 3번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어요. 꾸준한 관리덕인지 혈압, 당뇨도 없고 다리가 쑤시고 아픈 것도 없지요. 모 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더욱 기대되는 다음 50년
“저는 다른 신문도 보지만 그렇게 이 신 문을 기다릴 수 없어요. 다른 일은 제쳐놓 고 장로신문을 첫 페이 지부터 전부 다 읽는답 니다. 유호귀 장로님 글 도 좋지만 훌륭한 대학 교수 출신 장로님들이 글을 쓰는데 너무 감동 되고 좋은 글들이 많아 요. 그 글 가운데서 ‘예 화 이야기’도 많이 나 왔죠. 그 중에서 마음 에 남는 글들을 정리한 것 외에도 컴퓨터에 담 아둔 글들을 종이로 뽑아놓고 아는 사람 들에게 나눠주기도 해요. 그러면 전달받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답니다.”
김광식 목사는 “앞으로 장로신문사가 국 내는 물론 해외까지 확장되어 주님을 믿지 않는 많은 이들도 신문을 통해 감동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50주년을 통 해 이뤄지길 기도한다”고 이야기했다.
시대에 맞는 충실한 내용들이 신문에 담겨 있다고 말하는 김광식 목사는 “그 주 에 맞는 내용을 주마다 작성해 기고하는 글이 많이 보인다. 이는 매우 대단한 일이 며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주의 상황에 맞는 글들을 읽으면 더 큰 감동을 받아요. 이런 귀한 글들을 더 많은 분들이 구독해 함께 읽어나가면 참 좋겠어요. 책도 신문도 잘 읽지 않는 시 대가 왔지만 문서사역이라는 귀한 복음의 전달자 역할을 신문사가 끝까지 감당하길 바래요. 하나님께서 장로신문사를 사랑 하셔서 더욱 귀한 다음 50년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석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