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어르신이 그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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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어떤 목사님과 점심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북이 고향인 그 목사님의 부친도 목회자였는데 부친 목사님이 목회하던 중 한 번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을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담소를 나누던 중에 부친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께 질문을 하였다. “영락교회에 제 고모가 권사로 있는데 혹시 그 권사님을 아십니까?” 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고모 권사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영락교회에는 권사가 너무 많아서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친 목사님이 갑자기 당황해 하면서 “이름? 고모님 이름이 갑자기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니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웃어버렸고 당사자는 무안해졌다. 

그때 한경직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맞아요. 이름 기억 못하는 거 당연합니다. 우리가 다들 그저 고모님, 고모님! 하고 부르며 살지 누가 이름을 부르며 삽니까? 그러니 누가 고모님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까? 나도 내 고모님 이름 기억 못합니다.” 웃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고 숙연해졌다고 한다. 그 부친 목사님이 그 일을 기억하면서 한마디 하셨단다. “누가 뭐래도 한경직 목사님은 큰 인물이야!”

남이 허점을 보일 때 비웃고 무시하고 소문을 퍼트리고 공격하고 정치적 흥정을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이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윗사람인가? 언변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측근을 많이 거느린 사람도 아니고, 대형교회 목사도 아니고, 교계의 한자리 하는 사람도 아니다. 남을 감동시킬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요 대인(大人)이다. 감동을 전달시킬만한 사랑과 관용의 덕을 갖춘 사람이 어른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면 감동 받은 사람은 자기 사람이 된다. “고모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보다는 “나도 모릅니다. 당연한 일이에요”라는 한 마디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평생 존경을 보내는 것이다.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글썽거리던 경험을 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감격하여 주님의 사람들이 되었는데 우리의 삶은 너무 감동이 없다. 어르신이 그리운 세상이다. 교계에도 자칭 어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서글프다. 어버이 주일에 불러주어야 할 “어르신”이 없음을 한하노라!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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