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금반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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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주말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서울역 광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것은 논산훈련소로 아들을 면회하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러했다. 이 가운데에는 춘천에서 올라온 동호 교장선생님과 그의 아내 지숙 여사도 끼어 있었다.

“여봐 단단히 챙겨요. 눈 깜짝할 새에 채간다니까….” “염려 마세요. 아무리 난다 뛴다 해도 설마하니 속옷까지야 손을 대겠어요?” 지숙이는 말하면서 야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세상이 이 꼴이니 원 어디 마음놓고 살 수가 있담.” 동호는 학교 조회 때마다 전교생들에게 하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방인이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다.

마침 방학에다 그 동안 길러오던 돼지를 좋은 값으로 팔아 목돈도 마련이 되고 해서 논산훈련소로 둘째아들을 면회하러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논산훈련소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이 서울역에서만 소매치기를 조심하면 괜찮다는 말을 많이 들어 처음에는 전대를 만들어 동호가 허리에다 둘렀으나 오히려 숨기기는 커녕 막 달이 차오는 여인네 배 같아서 눈에 띄이기가 쉬워 하는 수 없이 지숙이가 속옷 배옷에다가 호주머니를 만들어 아예 돈을 넣은 채 완전히 봉하고 말았던 것이다.

돼지 서너 마리 값이니 적은 돈이 아니라서 거추장스럽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으나 기차에 타면 논산까지는 앉아서 갈테니 아들 위해 참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개찰구에 둥근 모자를 쓴 역무원이 나왔다. 그러자 정전으로 멎었던 방앗간이 전기가 들어오자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듯 한꺼번에 그 많은 사람들이 술렁댔다.

그것도 그럴 것이 3등칸은 좌석번호가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줄을 서요. 줄을 서라고요” 누군가가 큰소리를 질렀다. 동호와 지숙이도 밀리고 당기는 틈에 끼어 뱀꼬리처럼 움틀거렸다. 순서를 지켜 동방예의지국 국민답게 행동가지를 잘 해야 된다고 외치던 동호마저도 참으로 참기가 어려운 난장판이었다.

이때였다. 무슨 힘으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치 도미노게임처럼 뒤로부터 차례로 앞을 향해 넘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서인지 한 사람도 쓰러져가는 대열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했다. “아 무슨 짓들이야. 도대체!” 동호는 쓰러진 채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숙이는 아들 주려고 들고 있던 보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가 안경이 벗겨져 달아났다. “아이구 내 안경, 안경 떨어졌어요.” “안경이?” 머리를 돌려 뒤를 보면서 동호는 소리쳤다. 안경을 찾았다. 모두들 손을 털고 옷을 털었다.

그러나 역무원들은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이 별스럽게 여기지를 않는 표정이었다. “여봐 내가 먼저 올라가서 자리를 잡을테니 저 앞칸으로 와요. 알겠소?” “네 네 그래요. 어서 가서 자리를 잡으세요.”

기차가 미끄러지듯 서울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갑자기 지숙이가 까무라치듯 놀래며 신음소리를 냈다. “어머나 이 일을 어째!” 이 소리에 동호도 움찔했다. “왜? 무슨 일이오.” “돈, 돈이 없어졌어요.” 지숙이의 목소리는 절망스러움에 차 있었다. “돈이?” 동호의 목소리도 떨렸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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