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돈을 주거나 선물을 주기도 하고, 시간과 사랑과 눈물을 줄 수도 있다. 가끔 치료를 위해 가족 간에 장기를 기증하는 예도 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나의 일부를 주거나, 대체할 수 있는 여분을 주는 것이다. 돈을 주었다면 다시 벌거나 받아준 것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을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것을 주는 것이므로 나의 전존재를 주고, 나는 죽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 생명을 주는 것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15:13/This is the very best way to love. Put your life on the line for your friends.) 그런데 평소 잘 알고, 사랑하며 정을 주고 받고 하던 관계라면, 또 그럴 수 있겠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뿐인 생명을 줄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있었다. 6·25전쟁 때, 참전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의 국민들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한미동맹(韓美同盟)은 혈맹(血盟)이라고 부른다. 피(생명)로써 맺어진 동맹인 것이다. 1950.7.1. 미군은 한국 땅에 첫발을 디딘 이후 3년 1개월간 북한과 중국군을 상대로 우방지원 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 5만4,246명,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만3,284명의 인명희생을 겪었다. 우리 국군 희생자 64만5,000명의 27%에 해당하는 17만2,800명의 희생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국 국민을 위해,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한국 땅을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낯설고 물설은 이곳에 와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쳐 희생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 공원에 가면 기념비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란 제목이 써있다. 원래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명언이 있다. 한국전쟁(6·25동란)때의 戰史에는 특별한 기록이 있다. 미국군 중 장군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했고 그중 35명이 전사했다는 기록이다. 대통령과 장관, 특히 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참전했었다. 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중위는 1952년 미3사단의 중대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②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워커 중위는 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해 부자간 동시 참전했고, 1950.12.23. 의정부에서 워커 사령관이 차량사고로 순직하자 아버지 유해를 운구했고, 그 후 1977년 그도 육군대장이 되었다. ③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밴플리트 장군도 한국전에 참전해 사단장, 군단장, 8군 사령관으로 근무했으며, 그의 아들 지미 밴플리트 2세도 참전해 B-52폭격기 조종사로 근무 중 1952.4.4. 전투기를 몰고 평남 순천지역에 야간 출격 공중전투 중 북한이 쏜 대공포 사격으로 전사했다. ④ 미 해병 1항공단장 필드 해리스 장군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소령은 중공군 2차 공격 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⑤ 미 중앙정보국 알렌데라스 국장의 아들 데라스 2세도 해병 중위로 참전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평생 상이용사로 고생하였다. ⑥ 미 극동군 사령관 겸 UN군 사령관 클라크 육군대장의 아들도 6·25전쟁 중 부상을 당했다. 미 의회는 참전 용사들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해왔는데, 1차 세계대전 참전자 중 124명, 2차 세계대전 참전자 중 464명, 한국전 참전자 중 136명에게 수여됐다. 이 훈장을 가장 최근에 받은 사람이 에밀 카폰 대위다. 전사한 지 62년(2013.4월)만에 받았다. 그는 1950.11월 미 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 3대대 소속의 군종신부로서 평북 운산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탈출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남아 부상당한 전우들을 위로하고 군종사역을 하다가 세균에 감염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1956.7.1.) 1950년 미육사 졸업생 365명 중 110명이 참전, 그 중에 41명이 전사했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