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개척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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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섬에서 단독목회 17년 하면서 간절히 사모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껏 선교하는 것이었다. 기존교회에서는 교회가 할 일이 많고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척했다고 선교가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개척 멤버도 없이 가족끼리 시작한 개척교회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개척교회 예배당 선정이었는데, 아파트 단지 주변이 개척교회 하기 좋다고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전도하기가 쉽지만 않았다. 아파트는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대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개척교회는 서민 아파트가 더 전도하기가 좋고, 좀 더 친근감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쌀쌀하고 썰렁한지 말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아파트 단지 내 경로당을 찾아가 할머니들에게 주일날은 밥을 하지 말고 우리교회 오셔서 식사하시라고 간청하여 경로당 할머니 4분을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렸다. 그분들이 나가서 “동네에서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사람 좋더라. 친절하더라”라는 말 한마디가 전도문을 활짝 열게 해주었고, 지역주민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 싶어서 재활용 박스를 모으기 시작하여 1년 동안 열심히 모았다. 심지어 중고차를 사서 밤이면 몇 명 안 되는 교인이지만 같이 재활용을 모았다. 1년 동안 모은 돈은 1,000만원이 되었다. 그 돈으로 시청 환경과에 연락하여 환경미화원 150명, 경찰서에 연락하여 전 의경 150명, 교회 주변 어르신들 400명을 한 날 초청하여 대형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잘 대접해 드리고 선물도 드렸다. 동네 어르신들 400명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월출산 온천에 가서 목욕하고 진도대교(그 당시  진도대교가 쌍교가 연결되어 관광객이 몰려들 때)로 모시고 가 점심을 대접하고 선물을 드리며 어르신들을 섬겼다는 소문이 나 방송국과 신문 등에서 뉴스로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러자고 한 것이 아닌데 소문난 우리교회는 사람이 몰려오고 그때부터 사회복지를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가정봉사원 파견시설을 허가받아 120가정 도시락을 배달했다. 재정적 지원이나 보조가 없기 때문에 갈아엎을 배추, 양파를 주워 왔다. 봉고차가 밭에서 미끄러져 못 나오면 밭주인이 트랙터, 경운기로 끌어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정중하게 주인을 찾아가 “이렇게 고생해서 농사지어 농작물을 폐기 처분할 때 맘이 얼마나 아프시냐”고 위로하며 “우리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불우한 이웃에 도시락을 무료 배달하는데 반찬거리 만들려고 이렇게 버려진 것 거두러 다닌다”고 하면 기꺼이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매주마다 경로대학을 운영하여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교회는 작고 사람은 몰려들어 돌려보내고 인원 제한을 해야 할 때 맘이 아프기도 했다. 또한, 지역아동센터도 운영을 했는데 지역 학원가에서 교회로 학생들이 다 몰려드니까 학원경영이 어렵다고 사정하여 지역아동센터는 폐업을 하고 말았다.

우리교회는 개척이 어려운 시기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의 부흥을 연속하여 교회당 좌석이 부족하여 결국 지역을 옮겨 목포시에서 무안군 신도시 지역 종교부지를 매입하여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종교부지가 한 블록이라 나눌 수도 없어 경제적 부담이 많이 되고 건축까지 해야 해서 직영으로 건축하는데 정말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청업자들이 서로 먼저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싸우며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 탓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이 완공되고 신도시 남악에 이동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 이 지역 형편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안군에 소재한 대중교회 하면 시골 논밭 가운데 교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시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가 한번이라도 교회를 와보면 놀라곤 한다. 이 지역은 전남의 번지로 도청, 경찰청, 교육청 모든 관공서가 우리교회 주변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그래서 우리교회 머릿돌은 에벤에셀이다.

김준영 목사

<목포노회 대중교회, 총회부흥전도단 상임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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