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껄끄러운 사람을 품에 안은 당태종 · 세종대왕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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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태종은 아버지가 일으킨 나라를 반석 위에 튼튼히 세운 당나라 2대 왕이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원래 태자인 형 건성(建成) 및 동생 원길(元吉)을 죽이는 ‘현무문의 변’으로 황제가 된 뒤에는 자신이 혹시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가차없이 지적하도록 간언을 장려했다.

‘여기서 가장 신랄하고 적절한 간언을 하여 쓴 소리의 황제’로 올라선 사람이 위징이다. 위징은 본래 이건성 쪽 사람이었으나, 당태종은 그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통렬히 꾸짖도록 했던 것이다.  

한 번은 태종도 위징의 꼬장꼬장함에 진력이 나서 “저 늙은이를 죽이고 말 테다!”고 소리쳤지만, 황후의 간언을 듣고 취소했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대의에 따르는 황제로서 위징이라는 신하를 통하여 그의 치세가 빛을 보고 후대에 칭송을 받는 일에 일조가 되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은 황희 정승을 신하로 받아들여  왕과 신하의 명 콤비를 이루었다. 황희는 세종대왕 아들 중에서 원래 태자로 책봉된 맏형 양녕대군을 지지하는 신하였는데 양녕대군이 탈락하고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황희를 품에 안고 신하로 받아들여 두 사람은 임금과 신하의 명콤비라는 대명사로 후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당태종과 세종대왕은 원래 세자였던 맏형을 지지한 신하를 받아 들여 뜻을 펴고 성공한 임금으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 준다.

교회내에서 목회자 마음대로 한다는 건 독재이다. 독재는 나쁜 거다. 그러나 소신껏 일을 하려면 죽죽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아야 하는데 누군가 옆에서 브레이크를 밟아대면 될 일이 되겠는가?  흔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부흥을 독재가 아니고, 민주주의였더라도 그렇게 부흥이 되었을까?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는 했지만 사심(私心)이 없었는 걸로 대부분 이해한다.  

목회자들은 책임질 일이 있다. 목회자가 원하시는 목회철학대로 몇 년 간 적극 협력하면서 아론과 훌의 사명을 다해드렸는데도 부흥을 못 시키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 부흥을 시킬 자신이 없으면 독재를 하지 말고, 시무장로님들과 당회와 민주주의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면서 마음 편하게 목회하시고, 부흥이 안 된 책임은 목회자에게만 지우면 절대 안 되고, 당회와 시무장로와 교인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교회 내에서도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앞서 밝힌 두 왕처럼 내게 꼬장꼬장하게 따지고 목회자의 목회방침에 브레이크를 거는 껄끄럽고 귀찮은 교인까지도 큰 사랑으로 포용하여 충성봉사 할 수 있도록 신앙적인 지도를 해 주면 좋겠다.

이상조 장로

<경서노회 은퇴장로회 전회장·선산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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