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기도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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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일어나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보고 만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때 당혹감을 갖기도 한다. 때마다 기도한다. 기도한다고 다 응답이 되지 않는다. 응답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기 쉽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도를 응답의 차원으로만 생각한다.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기대하고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상태와 존재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다. ‘구원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달라고만 기도한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은혜를 누렸던 사람들이 얼마나 경건하고 거룩했을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왜 나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 응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성찰해 본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모세는 온유함으로, 다윗은 열심으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드렸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지 못한다. 우선 내 원대로 응답 받는 것이 급하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자문해 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대답은 바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속량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이다. 죄인이었던 내가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악하며 죄를 짓고 산다. 회개하고 새롭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할 때 마음 속에 미움이 없는가?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는가?  다툼은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 없이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선하신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심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 믿어야 한다. 응답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선하신 뜻이 계심을 믿어야 선한 자세이다.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다. 양자(養子)의 영(靈)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말씀을 사랑하며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욕구,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욕구이다. 내가 드리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해야 옳다.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1886~1968)는 기도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욕구’ 라고 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교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 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 힘쓰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과 두려움을 함께 가져야 한다. 기도는 마지막까지 기다리셨다가 우리의 신앙이 검증되기를 원하신다. 기도의 응답, 기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때(Kairos)에 일어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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