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히브리 산파를 통한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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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주변의 다른 소수 민족들과 별다른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이주해 온 히브리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자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을 학대하고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아기를 낳을 때에 남자 아기면 죽이고 여자아기만 살리라고 명령합니다. 이집트 왕은 인간의 생명을 자신의 정치 도구로 생각하고 필요하면 살리고, 필요 없으면 죽이는 소모품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태인 600만 명을 죽이고, 자기 동족을 3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들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물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 강도하는 사람도 있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생명을 경시하는 흐름 속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낙태입니다. 태아는 뱃속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눈을 감아 버리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낙태죄’가 66년 만에 효력을 잃었습니다. 국내에서 의사로부터 받는 임신 중절 수술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낙태죄가 폐지되었지만 현실은 스스로 자신들을 지킬 수 없는 태아들의 인권과 생명권이 침해당하였을 뿐입니다. 이집트 왕이 아기들을 죽이듯이, 오늘날도 뱃속에 있는 아기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하여 너무나도 쉽게 태아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독재자 바로 왕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기를 죽이라 명령하였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세상의 방법과 지혜를 사용하였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히브리 산파들은 바로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소중한 아기들을 살려냈습니다. 바로 왕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 되심을 믿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저지를 수는 없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존엄한 아기들의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명을 소중히 여긴 히브리 산파들의 모습이 바로 디아코니아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을 살리는 섬김과 긍휼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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