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큰 별(星)이 지다… 춘원의 마지막 길 벽초 홍명희와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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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는 일찍이 일본 동경에 유학하여 ‘다이세이중학(大成中學)’을 졸업했다. 그는 경술국치로 아버지 홍범식이 자결하자 귀국하여 ‘오산학교’, ‘휘문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0년 대 초반에는 한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그 후, 사대일보사 사장으로 재직 중인 1927년에 민족 단일 조직인 ‘신간회’의 창립에 관여하여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회운동에 적극 투신했다.

홍명희의 가장 큰 업적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장편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임꺽정’을 저술한 것이다. 1928년 조선일보에 첫 연재를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서 중단됐다가 광복직후, 미완의 상태로 전 10권이 간행됐다.

이 작품은 작가 본인이 밝혔듯이 반봉건적인 천민계층의 인물을 내세워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양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 했다는 것이다.

작품 속 귀족 계층의 계급적 우월성을 배격하고 천민의 활약을 당위론적 측면에서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 작가 홍명희 계급적 의식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홍명희는 1945년 광복직후에는 좌익운동에 가담했고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으며 1948년 9월 북한으로 자진 월북해 북한 공산당 정권수립을 도우면서 초대 부수상을 지낸 사람이다.

벽초는 작심한 듯 춘원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춘원! 실은 오은 김일성 주석께서 나를 이곳에 보냈어! 춘원 병세를 알아보고 치료케 하라는 명령을 갖고 왔어. 그러니 딴 생각은 하지 말고 오늘 나와 함께 평양으로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 보자 춘원!”

벽초는 옛 우정의 친구답게 지금 춘원을 크게 위로하고 도우려 했다. 

“……” 그러나 춘원은 계속 말이 없다. 눈 아래 계곡 시끄럽게 흘러가는 강물에나 시선을 주고 있었다. “춘원! 왜 말이 없는가?” 벽초는 춘원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춘원이 입을 천천히 열었다. “벽초 형!” “응 어서 말해 보게.” “백약이 무효란 말 들어 봤지?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나는 금년을 못넘기는 중증 폐결핵 말기 환자야.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말았음 좋겠어. 나는 이곳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둘 거야.”

힘없이 겨우 말을 내뱉는 춘원의 희멀건 눈자위에 붉은 핏발이 선명하고 이마에는 식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벽초의 풀어진 눈동자가 어느새 슬픈 듯, 몹시 흔들거리고 있었다. “춘원! 잘 알겠네. 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께…. 아무튼 조용히, 편안하게 명을 잘 마무리 하게나.”

벽초는 더 이상 이곳에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듯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초는 춘원에게 마지막 작별의 악수를 청하려 했다. 잠깐 하면서 춘원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벽초를 향해 말할게 있다했다.

이글거리는 7월의 태양이 서쪽하늘 계곡밑으로 얼굴을 묻고 있었고, 석양 강물 수면이 태양에 반사되어 계곡은 온통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벽초 형!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지금 물어봐도 될까?” 춘원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다. “어서 말해 보게! 아우님.” 벽초도 따라 표정이 금방 엄숙해 졌다.

“월북한 것 후회하지 않는가?” “응, 후회하지 않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 “응, 물어 봐!” “6.25전쟁을 일으킬 때, 형은 전쟁 반대편에서 의견을 주장했다는 말을 들었어. 그게 사실이야?”

“응, 사실이야. 나는 처음부터 동족끼리의 무력전쟁은 절대 안된다고 했어.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그 때 그것 때문에 내가 당에서 찍혀, 여러 번 죽을 뻔 했었지….”

벽초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서쪽 하늘의 석양에 걸려있는 구름송이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날 동경에서 유학생활 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던 애국청년들이, 이제는 서로 등을 돌리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줘라 하고 총부리를 겨누는 오늘의 현실에서 춘원과 벽초가 한자리에 앉아서 이제는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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