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새우깡 한 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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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거기 그 줄에 서 있었어?”

동호는 허둥지둥 승규에게로 뛰어갔다.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혼을 내리라던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저 기쁘고 반갑기만 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오래 계셨어요?” “오래라니? 내가 곧장 돌아왔는데 네가 자리에 없었지!”

“아버지 줄서고 있겠다고 말했지 않아요!”

동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 있었다는 게야? 밥도 안 먹고?” 가엾은 생각이 뭉클 솟구쳐 올랐다. 고지식하고 외골수인 내 새끼가 굶었다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아버지, 줄 서있다가 아버지가 47분이 넘도록 오시지 않아 앞 뒤 사람에게 차례를 부탁해 놓고 다른 관람장으로 갔었던 거예요.”

“임마! 내가 찾을 것을 생각 했어야지!”

“안 오시니까 아버지도 저를 믿고 늦게 오시나보다 했지요.”

동호는 기가 차서 곧바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야 이녀석아! 아무려면 너보고 기다리라구 해놓고 내가 구경을 가? 참 너도 한심하구나.” 동호는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기뻤다, 실망했다, 서운했다, 화가 치미는 갈피 잡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이렇게 된걸 어떡합니까. 어서 들어와 서세요. 곧 우리가 들어갈 차례에요.”

“너 그럼 식사는?”

“했지요 지금 세시가 넘었는데 안해요?”

동호는 줄을 서려고 내딛던 발을 멈추었다.

‘그래 너 잘했다. 이 뻔뻔스러운 놈아!’ 한바탕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갑자기 시장기가 온몸에 퍼졌다. ‘아이구 이 답답이야 이놈을 장남이라구 바라고 있으니.’ 도저히 심기가 불편해서 과학관 구경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버지 화나셨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오늘의 사회는 다 같은 여건하에서 누가 어느 만큼 시간을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요. 몇 시간을 줄서서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워요? 그래서 그 시간에 다른 관람장을 구경했지요.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놈이 길을 잃어버리겠어요?”

별로 말을 조리있게 잘하지 못하던 놈이 오늘따라 웬일로 공자님 말씀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됐던 화가 좀처럼 사그라지지를 않았다.

‘방송을 부탁하고 광고지를 써서 붙이며 법석쳤던 내가 바보지.’ 꼭 화를 한바탕 냈으면 좋겠는데 분위기가 점점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승규는 새우깡 봉지를 꺼내 들면서 말을 이었다.

“아버지 이 새우깡 드셔보세요. 아주 맛있어요.”

“점심을 먹었다면서…”

“이게 점심이란 말이에요 아버지.”

“음 그래?”

동호는 새우깡 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서너 개를 입 안에다 던져 넣었다. 아삭아삭 소리가 나며 씹히는 새우깡이 그렇게도 고소하고 맛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승규야 이거 가지고 점심이 되겠냐? … 승규야 어찌됐건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설사 아버지가 좀 늦었다고 해도 약속을 안 지키면 되나?”

“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동호는 그제서야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내 새끼가 몰라서 그랬는걸…’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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