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법전은 BC 1790년경 바벨론을 통치했던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벨론의 법전입니다. 높이 2.25m의 돌기둥에 282개의 법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무라비 시대 이후 약 300년이 지난 BC 1440년경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기록합니다. 모세 율법과 함무라비 법전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지만 시대적 배경에 따른 유사성이 존재하고 또한 성격상의 분명한 차이점도 드러납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사람과 사물을 동등하게 취급하여 모든 범죄를 똑같이 다루고 있는 반면, 모세 율법은 인간을 존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 보면 아이를 밴 임산부를 쳐서 낙태한 경우, 피해를 준 만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갚아주어야 합니다. 즉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해를 끼친 만큼 같은 형태로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함무라비 법전에 나타난 ‘동형보복법’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복수’에 대해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에 해를 끼친 만큼 같은 형태로 ‘배상’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보상할 범위를 규정한 법이 모세의 율법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피해자의 ‘복수’를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서, 모세의 율법은 가해자의 ‘배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당한 경우에 하나님은 ‘복수’하라고 명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복수는 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은 상대방이 가한 것보다 더 심한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은 상류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으로 그들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복당하거나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제정된 악법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형법과 민법에만 초점을 맞추며 가혹하고 잔혹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모세 율법은 범죄의 영향뿐 아니라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우선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인간의 삶을 존중하며,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더 자비로운 규정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성서의 ‘동형보복법’을 인용하시며 관용과 용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동형보복으로 해석하여 개인적인 보복과 분풀이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구약성서는 함무라비 법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구약의 율법이 가지는 근본적인 취지인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취지와 근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인간의 삶의 가치를 높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디아코니아가 담겨져 있습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