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회개 촉구하는 설교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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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회개’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하신다. ‘회개’는 개인의 신앙적, 도덕적 행위에 속한다. 회개한 자는 그 행실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회개’는 전심(全心)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우리 주님! 이스라엘이 아집(我執)을 버리고 주님께로 향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미안하다’, ‘내가 고치도록 노력한다’ 정도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참된 회개는 주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과 충성이어야 한다. 자신의 전인적(全人的) 변화이다.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다. 

무력에 의해 지상에 메시아 왕국을 수립하려던 마카바이오스(Macceabeus)가 실패한 뒤에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 전투적인 열심당의 결사적 항전을 지휘하던 랍비 요하네스 벤 자카이에게 제자가 말했다. “아아! 슬프도다! 이스라엘의 속죄의 번제소가 파괴되었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내 아들아! 슬퍼 말라. 우리에게는 아직도 그에 못지 않는 속죄의 길이 하나 더 남아 있다. 그것은 회개하는 것이다.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예수님의 선포와 음성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갱신(更新)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회개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는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요구와 제안이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는 말씀은 바로 회개로의 부르심이다.   

동이 터 오는 새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구별되는 표지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사람이다. 성령께서는 이 믿음에 회개를 은혜로 주신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자의 혀를 펴 주신다. 못 보는 눈을 열어 보게 해 주신다. 믿음과 회개는 언약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앞에서 지녀야 할 적절한 자세이다.  

우리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 앞에서 황송해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전능자를 앙망하고 그의 영원하신 팔을 붙잡아야 한다. 거듭거듭 돌이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세미(細微)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들을 수 있다. 부흥은 성령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들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회개를 갈망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예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변화를 갈망해야 한다. 

설교의 황제로 불리는 스펄전 목사의 지적이다.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위대한 목표는 죽은 영혼을 구원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구원은 회개한 영혼이 받는다.” 20세기 개혁 교회 설교의 대가(大家)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일주일에 한 번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아직도 회개해야 할 사람들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회개는 구원의 전제 조건이다. 은혜와 복을 받는 첫 단계이다. 언제부터인가 강단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 듣자니 축복이고 은혜이고 즐거움이다. 복과 건강이며 행복이다. 이는 기복적(祈福的)인 설교의 세속화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한다. 과연 이게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가 듣고 싶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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