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1831-1881)는 우방국인 미국의 대통령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링컨 대통령보다 4기가 늦게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전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회적인 지도층에 진입했지만 그가 하원의원 시절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었고, 이제 51세의 완숙한 장년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의 웅지를 펴보려는 찰라에 암살을 당했기에, 역사적인 인물은 되지 못했다.
클리블랜드 인근 쿠야호가 카운티 흑인 마을의 통나무집 가난한 농민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겨우 두 살 때에 아버지를 병사로 잃고, 가난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어렵게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서도 구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책을 얻어 읽는 등 어깨너머로 공부를 했다. 그때에 ‘세상에 우리처럼 가난한 집은 없다. 엄마가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라고 한탄하는 어머니에게 가필드는 ‘어머니 그런 말 마세요. 제 친구중에는 저보다 더 가난한 아이도 있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하면서 ‘어머니 저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예요’라며 말했고,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래 부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거라’고 말했으며, 이를 평생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그는 26세에 그가 졸업한 하이림대학의 학장을 했고, 남북전쟁에 참전해서 전공을 세워, 소장으로 전역한 후에 1863년에 하원의원이 되어 18년간 워싱턴 정가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50세가 되는 1881년 3월에 드디어 미국 20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취임식날 그는 늙은 어머니를 직접 부축하여 취임식장에 갔으며, 자신의 자리에 어머니를 앉히고 그 옆에서 취임 연설을 하였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를 미국 대통령이 되도록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신 제 어머니를 이 자리에 모시고 나왔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오로지 저의 어머니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식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이런 가필드는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이 “너희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모두가 의사, 장군, 정치가 등의 대답을 할 때에도, 조용하게 있다가 선생의 재촉에 “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해 모두의 실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재차 그 뜻을 묻는 선생의 질문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성숙한 대답을 하여 장내를 숙연케 했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신실한 삶을 살려고 하는 좌우명을 지켰던 것이다.
1881년 10월 2일 모교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려고 워싱턴의 볼티모어에 있는 포토맥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가필드는 31세의 찰스 기포가 쏜 두 발의 총탄에 맞고 쓰러진 후 2개월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6개월의 짧은 임기를 마쳤으며, 실제로 대통령의 임기는 겨우 4개월을 채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평소에 지녔던 좌우명인 ‘*약속은 적게 하고 진실만 말한다 *남을 비방하거나 나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밀은 내 것이나 남의 것이나 지킨다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잠들기 전에 기도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를 평생 지키려고 노력했다.
비록 비명에 갔기에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원칙으로 살았던 의인으로서 정말 어릴 때 꿈처럼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았던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