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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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졌어요? 라고 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뀝니다. 참 신기하게 달라집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네가 문제야! 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보고 배웁니다. 느낍니다. 달라집니다. 서로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내가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치유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빠른 것 같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가 달라졌어요. 우리 교회 목사님이 달라졌어요. 우리 교회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이 달라졌어요.

진짜 달라졌어요. 이런 말이 들려야 합니다. 이것이 치유이며, 회복이며, 부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삭개오라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왕따입니다. 세금을 거두는 세리의 장이다 보니 유대인으로부터는 외톨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것 가졌지만 외롭습니다. 공허합니다. 그리고 키가 작았다는 것은 그의 신체적 콤플렉스만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음과 삶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네로 간다고 할 때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 나갔던 그 마음과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그만큼 그는 심각하고 갈급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 삭개오를 보면서 한국교회를 보게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삭개오의 외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아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외롭다니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지금 왕따이지 않습니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어때요?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교인이다라고 말하면 왕따입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은 능력인데, 교회(성도)는 왕따입니다. 물론 악한 영들의 도전과 의도성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 교회가 스스로 왕따를 불러오는 많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랜 현상입니다만, 많은 사람이 교회를 질타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뭔가 시원해하는 느낌이 드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따돌리면 사람들이 듣거든요. 인기가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다른 것보다 더 통쾌하게 여깁니다. 시원한 느낌을 받는 거지요. 요즘 신조어가 많습니다만, 좀 예전 신조어로 말하면 ‘사이다’입니다.

여리고 사람에게 삭개오는 사이다였습니다. 부자이고, 권력도 있고, 누리며 사는데, 그를 놀려 먹으니 사이다지요. 얼마나 속이 뻥 뚫렸겠습니까? 비웃고, 수군거리며,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갈 때는 또 얼마나 웃겼겠습니까? 사이다죠. 아마 통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와 부흥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이 됩니다.

삭개오, 그가 진짜 사이다가 된 겁니다. 뻥 뚫어 주는 사람,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갈급해하며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미 영적 반전이 시작되었지만, 진짜 반전은 다음 부분인 것 같습니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어 가로되 주여, 보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완전한 자기 치유와 부흥입니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여러분, 삭개오는 진짜 사이다가 되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삭개오 이야기를 듣고 삭개오의 변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유쾌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에 바로 이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진짜 사이다가 필요하지요.

뻥 뚫리네. 시원하네.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만 하면 기뻐, 감사해, 그래도 믿을만해.

여러분, 삭개오는 갈급함을 느낄 때 예수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기 위하여 교회로, 중직자로, 그리고 더 위로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모든 자리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큼직하게, 선명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복음, 오직 예수님입니다.

삭개오가 세상 것을 숙이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먼저 치유되고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여리고의 사람들이 치유되고, 여리고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벗어나는 길, 소망이 되고, 사이다가 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를 치유하고 살릴 수 있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한 단어만 기억합시다. ‘사이다’   

곽금배 목사

<구미하늘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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