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교도소에서 검정고시반을 비롯 영어와 국어, 성경을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36년간 이다. 사람의 사랑이란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다. 그리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그들이 생각나고, 또 너무 더워도 그들이 생각난다. 비바람이 쳐도 생각이 나고 오늘처럼 하늘이 너무 새파래도 생각이 난다. 작은 창틈으로 저렇게 파란 하늘이 잘 보일까? 뒷산의 아름다운 단풍도 볼 수 있을까? 이른 봄, 돌 틈에 여리게 돋아나는 풀 포기도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부지런히 그들에게 바깥소식도 전했다.
추석이면 남보다 먼저 송편을 먹이고 싶고, 설이면 가래떡을 가져다 먼저 먹이고 싶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집에서보다 오히려 명절을 더 잘 챙겨 주신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그저 마음이 그들을 향해 있다고 해도 아무려면 집만 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들이 가진 것 이상으로 사랑과 정성으로 대해줄 때 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사랑에 메마르고 가슴시린 저들에게 나는 작은 연탄 한 장의 마음으로 다가갔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행복의 메아리는 큰 울림이 된다. 사랑에 굶주린 저들에게 적은 사랑을 베풀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들의 가슴에서 솟아나오는 사랑은 폭포수와도 같다. 이 세상에 사랑을 나누어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 없다. 또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부요한 사람도 없다.
그들 중 김모씨는 40세가 넘어서 초등학교 과정을 시작했다. 학력이라곤 초등학교 1학년 중퇴가 전부인 그는 40년간 문맹으로 답답한 인생을 살아왔다. 나이 40세가 훌쩍 넘어 홀홀단신 이룬 것도 없는 그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의 삶은 패배의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가슴은 시리고 공허했던 그였다. 암담한 미래와 절망적인 현재의 그에게 이대로 살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는 우리 반에 와서 한글공부부터 했다. 난 그를 위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네모칸이 그려진 공책을 샀다. 그와 한방에 있던 식구들은 개인교사가 되어 그를 도왔다. 그는 마침내 43살에 초등학교 졸업 자격을 갖게 되었다. 길거리 간판도 읽게 됐다. “선생님! 세상이 환해졌어요. 새로운 천지가 보여요.” 그는 너무 기뻐하며 나에게 편지를 쓰고 또 써주었다. 글씨도 잘 쓰고 사연도 얼마나 잘 쓰는지, 가끔씩 답장을 보내줄 때마다 그렇게 기뻐하곤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카드를 보냈더니 태어나 43년 만에 처음 받는 카드라며 감격해 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출소 후 막노동도 하고 재활용품 수거하는 일도 하며 제 힘으로 방도 마련하여 힘있게 살고 있다. 난 사실 그들을 위해서 해준 것은 없다. 겨우 일주일에 두어 시간 남짓 그들과 함께 조금의 온기를 보탰을 뿐이다. 그러고도 내가 받은 것은 몇 곱절이나 되니, 그들에겐 갚아도 못다할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듯하다.
처음 검정고시 반을 시작했을 땐 좀 나이가 들어 보이려고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리 젊은 척하려고 해도 젊게 봐주지 않는게 좀 달라졌을까,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36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반을 거쳐간 수많은 형제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서든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 사회에서 유용한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김영숙 권사
• 가정문화원 원장
• 반포교회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