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대표 작품은 <환상교향곡>이다. 그는 한 여인을 미치도록 사랑했으나 실패한 사랑의 아픈 감정을 승화시켜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이 교향곡의 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남겼다. “사랑에 미치고 인생에 지친, 한 젊은 예술가가 아편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아편의 양이 치사량에 미치지 못하여 혼수상태로 빠져드는데, 몽롱한 환각 상태 속에서 그는 여러 장면의 환상을 보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이 환상교향곡을 1830년에 작곡하였는데,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사회적인 혼란과 경제적 파탄의 시기였다. 또한 베를리오즈 자신의 인생에서도 파탄을 맞았던 시기였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 공부를 하였으나 뒤늦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여 작곡가로 자신의 진로를 바꾸어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는 베토벤에 대하여 항상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는 핸디캡이 있었다.
나중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음악 문제로 교수들과 자주 다투었고, 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도전하였으나 세 번이나 계속 탈락하였다. 그러던 중 1827년 그의 나이 24살에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상연된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하였는데, 오필리아로 분장한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Harriet Smithson)을 보고 완전히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무명의 음악가에다 3살이나 어린 남자를 유명 배우가 거들떠보지 않았고, 이때부터 베를리오즈의 삶은 지옥으로 변했다.
그는 4번째 도전한 ‘로마대상’에 수상자가 되어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로마에 유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엇에 대한 애정을 지울 수가 없어서 3년의 유학생활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와 이제는 인기가 시들해진 해리엇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1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경제적 쪼들림과 성격 차이에서 오는 부부싸움, 그리고 부인의 알코올 중독이 이유였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삶이 주는 불행과 좌절을 작곡으로 극복하였다.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작곡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고, 모든 환경에서 얻은 모티브가 그의 음악이 되었다. 특히 해리엇으로부터의 실연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환상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그를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생길에서 실패와 좌절은 새로운 문을 여는 과정이다. 이것을 성경은 고난이 주는 유익이라고 가르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