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원 윅(One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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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는 안 그랬었는데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장손녀인 혜종이는 만나기만 하면 헤어질 것이 걱정이 돼서 첫마디부터가 언제 가느냐, 더 있다가 가면 안되느냐고 이렇게 떼쓰고 저렇게 우겨대며 졸라댄다. 

“그랜드 파! 꼭 가야 돼요? 안가면 안돼요?”

수없이 하는 말이지만 실없이 장난기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맞장구를 치면 금세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안색으로 보아서 알 수가 있었다.

“혜종아, 왜 내가 너하고 같이 얘기하고 놀고 싶지가 않겠니? 그렇지만 네가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도 한국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단다.”

“그러니까 원 윅만 더 있다 가면 안돼요?”

영어로 말했으면 좋겠는데 모국어를 잊어서는 안된다며 할아버지가 야단을 치는 바람에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미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영어로 징검다리를 놓아 뛰어넘곤 했다.

“혜종아,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가면 안돼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가시면 안돼요 라고 말하는 거야.”

혜종이는 웃었다.

영어는 한마디로 통하는데 왜 한국말은 그렇게도 복잡하냐는 웃음이었다.

“가시면이라고 하라구요?”

“그렇지 그렇게 말해야 쏘리가 안되는 거거든.”

실례라는 말을 혜종이가 알 턱이 없을 것 같아서 쏘리라고 영어로 말한 것이다.

“할아버지 원 윅만 더 있다가… 가시면 안돼요?”

“혜종아 있다가라는 말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다 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거야.”

 혜종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한국말은 너무너무 어려워요.”

순호는 한국말이 어렵다고? 영어가 상놈말이 돼서 그렇지 대통령이나 아버지나 친구나 다 유로 통하니 그게 양반 말이냐? 하고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혜종이는 말하는 족족 주의를 듣고 나니까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는지조차도 잊었는지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옛날 얘기 해주어요, 프리스.”

순호는 빙긋이 웃었다.

혜종이에게 들려주는 옛날 얘기는 애초부터 내용이 없었다.

“큰 돼지와 작은 돼지가 있었는데 하루는 피크닉을 가게 되었어.”

이렇게 말을 시작해 놓고는 손가락 두 개로 혜종이 발등에다 세웠다. 그러면 웃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똑바로 얼굴만 바라봐도 웃는데 돼지 두 마리가 언덕 위를 걸어간다면서 발위로부터 껑충껑충 짚으며 무릎 위로 올라가니 간지러워 죽겠다고 몸태질을 하며 웃는다.

그것이 옛날 얘기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를 않았다. 간지러우면서도 또 얘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 미식축구 응원흉내를 냈다. 손뼉을 치며 파이팅! 파이팅!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골대를 넘겼다고 치고 두 팔을 번쩍 들어 감격의 표시로 환호성을 올리면서 벌렁 뒤로 쓰러진다. 그러면 벌렸던 팔에 혜종이도 걸려서 함께 뒤로 벌렁 나가 넘어지는 것이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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