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는 59명의 사형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론이 떠오르면서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이래 지금까지 26년이 지나도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됩니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게 국제사회의 대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볼 때마다 즉각적인 사형 집행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람들은 성서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어야 한다는 “동해보복법”을 들어 복수의 정당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거기에 더해 성서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낡은 책이며,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 말합니다. 그런 명령을 내린 하나님은 폭력적이고 무서운 하나님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계명들을 보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 싶은 법과 계명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이스라엘 공동체 법의 의도를 생각지 않고 자구에 매여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의 의도와 정신은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구약의 율법은 십계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헌법 역할을 하는 십계명이 소개된 후 하나님에 관한 법과 형법, 보상법 등이 나타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해보복법입니다. ‘돌로 치라, 죽이라’는 표현은 잔인성과 폭력성이 담긴 명령이라기보다 사형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오늘의 표현으로 하면 ‘사형에 처하라’는 집행의 명령과 동일합니다. 이것을 복수하라는 법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동해보복법은 보복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과잉 보복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이 법은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고대 근동지역의 여러 법전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타인의 재산이나 소유에 해를 끼쳤을 때 가졌던 고대 근동의 공통적인 재판의 원칙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당하면 즉시 그를 공격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대부분 분노심으로 피해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해를 가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 개인적인 보복을 금하고 재판장이나 더 높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공정한 벌을 내리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개인의 분풀이에 이용되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생명과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디아코니아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성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서로의 생명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디아코니아의 정신이 회복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