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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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크리스챤 신문 및 대광학교 ⑤

한 줄기 빛이요, 소금의 역할 감당

4.19거리 나선 학생들 위해 기도

교목 때 졸업앞둔 제자들 발 씻어줘

‘도움 받는 자 아닌 도와주는 자’ 소망

대광뉴우스 36호(1960.6)에 본인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생전 처음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그렇게 긴 거리를 걸어보지 못한 나는 동대문을 지나서부터 허리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일을 당시 대광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었던 최완택 목사는 그의 글(수상집 <아름다운 순간>)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해마다 4월이 오고 그날이 다가오면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날 우리들은 만용을 부렸는지도 모릅니다. 훗날 역사가 증명하듯이 4월 19일, 그 위대한 날의 불길을 맨 처음 올린 것이 우리 학교라는 것만 미리 깨달았더라도 우리들은 자랑스레 일찍이 귀가했을 것인데.

이른 아침부터 뛰쳐 나갔지만 파상적인 데모를 할 수밖에 없어서 한 무리는 종로에서 또 한 무리는 고려대학 앞에서 포로가 되어 되돌아온 우리들 대광 아이들은 모두들 좌절감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들 고교 3년생들이 주동이 되어 전교생이 한꺼번에 일사불란한 데모를 다시 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장을 비롯한 온건파 선생님들은 이젠 됐으니 참으라고 설득하기에 바빴고, 소식 듣고 달려온 학부형들은 눈이 벌개서 제 자식을 찾아 운동장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몹시 지치기는 했지만 매서운 결의로 눈들이 사뭇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불붙은 화약고를 그 어느 누가 감히 끌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 당신께서 나섰습니다. 당신은 단에 오르셨고, 한동안 우리들을 주시하셨습니다. 차츰차츰 아수라장 같던 운동장의 흥분이 가라앉아 갔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여러분의 결의가 그러니, 우리 기도 드리고 나갑시다.”

이 무슨 생뚱한 소리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머리를 숙였습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당신이 올리신 기도의 한 대목은, “하나님, 이 어린 양들이 우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조국의 이 기막힌 현실을 굽어 살피소서. 그리고 순수한 열기로 뛰쳐나가는 이 어린 양 무리를 지켜 주소서.”

기도가 끝났을 때, 운동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눈가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이슬 방울이 함초롬히 맺혀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극성스레 만류하시던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등을 두들겨 주면서 격려했고 박수치며 전송해 주었습니다.

고 황광은 목사님! 주님의 나라에서 저희들을 위해 다시 그날의 기도를 올려 주십시오.

그 끔찍스러웠던 비바람이 지나가고 학생들은 다시 학원에 모여 들었으나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내 정상적인 분위기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이창로 교장은 전 직원들에게 표어를 현상 모집했다.

그때 황광은 목사가 지은 표어가 1등으로 당선되어 월간지 <사상계> 1년 분을 상으로 받게 되었다.

대광은 황소, 받을 때는 씽 받고

받고 나면 풀밭에서 꼴을 먹는다.

이 표어가 학원의 학습 분위기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황광은 목사가 그때 기도한 내용은 오늘날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대광의 아들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졸업식에서 행한 기도는 녹음되어 남아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명령을 전달할 빛의 용사를 길러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광야와 같이 거친 이 강토에 빛을 기다리는 이 구석진 사회에, 그대로 한 줄기 빛이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많은 졸업생이 오늘 영예의 졸업장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이들의 앞길을 축복해, 또 그들의 건투를 빌어 먼저 하나님께 경배와 간구를 드리는 바입니다.

주여, 약할 때에 우리를 도우시고 강할 때에 우리를 붙드셔서, 능히 홀로 거친 물결을 헤치고 올라가는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배운 세상 학문도 그들에게 힘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그들이 받은 경천 애인과 민족 수호의 민족 정신을 펴는 데 필요한 인물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그들만은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도와주는 자, 무엇을 가지는 자가 아니라 무엇을 주는 자, 나를 사랑하는 자보다 남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해주소서.

그들의 가정에 축복하셔서 그들의 일과 꿈에 지장이 없게 하시고, 더욱이 지난해 4월에 일어났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억해 불의에 굴치 않고 자유를 사랑하는 용사가 되게 하시고, 이 민족의 운명과 자기 운명을 끊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의 영예를 영예로만 간직하지 말고 새 출발의 계기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광은 목사에게 ‘대광 교목 시절’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아마 그는 4‧19 때의 일에 못지않게 ‘학생들의 발을 씻어준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그 일은 그 자신이 설교집 <성직자>에다 다음과 같이 써놓고 있다.

고등학교의 교목으로 있던 어느 해의 일이다. 졸업반을 위한 캠핑에서의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한 장면은 내가 아이들의 발을 씻어주던 일이다.

캠핑 막바지의 어느 저녁, 내가 담당한 캐빈 ‘숙사’의 12명에게 예수님이 최후로 제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발을 한번 씻어 줘야 하겠다는 뜻에서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그들에게 들어갔다. 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최종적으로 인격 훈련의 도움이 되고자 베풀어진 수양회이기에 이런 인상적인 순서도 좋으리라고 생각했기에 아무 부담없이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그들의 반응에 우선 깜짝 놀랐다.

“야야, 목사님이 우리 발을 씻어 주신댄다. 자, 모두 방으로들 들어가자.”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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