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염원은 천심이다
남북한은 1945년 광복후 3년간 미‧소 군정을 거쳐 서로 다른 체제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남한은 시장경제와 인권을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북한은 평등과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두 체제는 더욱 벌어져 남한은 개방적이고 자유민주적인 체제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북한은 75년 동안 3명의 세습 지도자가 이끌어가는 폐쇄적 통제경제의 인민민주주의 국가로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에 100여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굶주리는 주민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개발하여 공포정치를 계속함으로써, 김정은 지도자의 독재성에 세계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남한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우와 좌, 자유와 평등의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념을 넘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하고 있다. 중국을 보라. 합리적 수정공산주의 방향이 오늘의 경제대국 중국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또한 북한이 직시해야 할 것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핵이 없어서 붕괴되었던가?
한 나라의 국가 권력은 개인의 소유물이 결코 아니다. 북한은 본래 왕조체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일가는 공적(公的)인 국가 권력을 왕조체제로 변질시켜 사유화(私有化)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민들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와 최첨단 미사일 무기를 개발하여 공포정치를 하는 것은 진정 주민의 삶보다 체제 유지에 초점이 있는 것 아닌가? 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정치체제의 주체는 통치자가 아니고 주민이다. 이들이 국가의 주인이다. 이들은 평소 양같이 순하지만, 분노가 폭발하면 독재자는 비참하게 끝난다. 근대 대표적인 시민혁명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 청교도혁명 때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던 찰스 1세가 의회 세력에 의해 처형되고, 프랑스혁명 때 루이16세도 의회 세력에 의해 처형된 것을 상기해 보라. 시민의 힘, 주민의 힘이 민력(people power)이다. 민력은 민심(民心)이다. 그것을 체제화 한 것이 민주주의다. 핵무기와 첨단무기들을 아무리 많이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민심을 잃으면 비참하게 끝나게 된다는 것을 인류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다. 북한은 너무 늦기 전에 주권재민(主權在民) 의식을 존중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조치가 절실하다. 70여 년 동안 99% 참석에 100% 찬성 투표하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북한은 국호에 담겨 있는 그대로 민주와 공화국 체제가 회복되어야 소망이 있다. 주민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돌아가야 낙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심(私心)을 버리고 주민의 생존권을 먼저 중시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기 위해서 우선 비핵화 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더욱 강조하지만, 핵무기가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생각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나보다 먼저 주민을 살리는 정책으로 돌아설 때, 북한의 급진적 발전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가치관은 독재정치 합리화의 궤변이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는 “나는 국가 제일의 공복(公僕)이다”라고 했다. 공복이란 지도자는 주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을 섬기는 머슴이란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심는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김정은 지도자는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북한 동포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서 ‘생즉사(生卽死)’ 정신의 지혜를 될수록 빠르게 발휘해야 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