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6.25 때 개성에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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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개성이 6.25 전에는 남한에 속하였다가 휴전 후에는 북한에 속하였다. 유석종 목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님을 따라 교회에 나갔으며 어머니는 개성에 있는 호스턴 여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서울 배화여고 교장을 지낸 진수진 교장과 변형태 씨 부인과 같은 반에서 셋이 늘 1, 2, 3등을 겨루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 후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한 목사와 결혼을 하였으며, 아버지가 장단교회에 파송 받아 목회를 하다가 일정말기에 교회를 폐쇄하여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박순천 여사 밑에서 농촌계몽운동과 미신타파 운동을 하였다.

그 후 6.25전쟁이 일어나 아버지는 반공연설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 후 소식을 모른다. 어머니도 체포되어 다른 수감자와 함께 10명이 포박되어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어머니 일행을 끌고 가는 사람이 어머니가 소학교 때 가르친 제자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에게 우리를 어디에 끌고 가느냐고 물으니 그의 말이 임진강 근처 처형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 제자에게 우리 10명을 풀어주면 세상이 바뀌게 될 때 우리가 책임지고 제자를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어머니의 끈질긴 설득에 의하여 일행을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몸을 묶은 밧줄을 풀면서 도망치라고 하였다. 

그래서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어머니는 아는 집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그 후 인민군이 철수하고 유엔군이 들어와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에 어머니 일행의 생명을 살려준 그 청년이 국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그 일행이 재판이 열리는 장소에 가서 “이 청년이 우리 열 사람을 살려주었다”는 그 당시 실정을 증언하며 우리 열 사람을 먼저 죽여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여 처형을 면하게 되었다. 제자가 자기목숨을 걸고 열 사람을 풀어 주었더니 자기가 처형될 직전에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죽음의 직전에서 은인을 만나 살게 된 일과 어머니가 그 은인이 처형될 직전에 살게 한 것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며 감사하며 사셨다고 하였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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