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환자는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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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도 직업이라면 직업이다. 직업의 관점에서 의료 선교사의 일과를 보면 하는 일은 분명하다. 근무 시간에 정해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조직의 구속을 받거나 특별한 통제를 받지 않는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수시로 전화하는 친구도 없다. 한국에서처럼 마음대로 볼 텔레비전도 없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편하려면 마냥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만들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나는 주로 일을 만들면서 살아온 편이다. ‘만들어진 일’이란 왕진이나 이동진료를 말한다. 왕진은 가까운 거리를 잠시 다녀오는 것이고, 이동진료는 이틀 이상 걸리는 먼 지역을 순회하며 다녀오는 것을 말한다.

나는 선교사로 가기 전부터 왕진을 자주 다녔다. 의사가 되면 무의 진료를 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강원도 간성과 속초에서 병원을 개업했을 때에도 왕진을 많이 다녔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는 지, 네팔에 처음 갔을 때부터 왕진이나 이동진료를 많이 다녔다. 내가 왕진을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기 집으로 왕진을 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퇴근하고 나서도 한가할 수가 없었다. 근무 시간 이후에 왕진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또한 틈만 나면 고아원을 방문하거나 행려병자를 돌보았다. 포카라 시내에서 7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티베트 난민촌을 방문하기도 했다. 난민들이 수시로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병원을 찾아가도 환자 취급을 해주지 않고 대우도 좋지 않아 불쾌해서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네팔 의사와 간호사들이 티베트 난민들을 괄시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병원 응급실 문 밖에서 어딘가 아픈 게 분명한 거지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서성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를 거들떠보는 간호사나 의사가 없다. 그들에게 거지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인 네팔에서 거지는 최하위 계급에서조차 소외된 존재 이다. 카스트 신분제에도 포함되지 않는 거지들은 동물인 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힌두교에서 소는 매우 신성시하는 동물이다). 그러다 보니 다치는 일도 많고 아플 때도 더 많지만 병원에 갈 수가 없다. 병원에서 그들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거지를 만나러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외국인 의사가 아는 척을 하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상처난 곳을 보여주었다. 몸은 온통 멍투성이고, 까진 무릎에는 고름이 누렇게 흘러나와 엉겨 붙어 있었다. 네팔은 천지가 돌이라 조금만 잘못해도 넘어져서 상처가 많이 생긴다.

나는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조용히 나 따라 들어와요.”

거지가 쭈뼛거리며 나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왔다. 상처난 부위를 깨끗이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약을 손에 쥐어주고 돌려보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응급실 앞에 거지들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다 받아주니까 거지들 사이에 소문이 난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싫어할 일인데 내가 다른 환자들을 잘 치료해서 환자가 나날이 늘고 있던 터라 내 앞에서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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