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두레박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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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박 목사가 되겠습니다.’

설교 중에 목사님의 한 마디다. 아니 두레박이 되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씀인가?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인다. 우물에 아무리 물이 가득히 고여 있어도, 아무리 목말라도 두레박이 없으면 물을 먹을 수 없다. 또 두레박을 이리저리 잘 움직여야 맑은 물을 가득 담아 올릴 수 있다. 바로 성도들에게 좋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기다리고 있는 좋은 두레박이 되고 싶다는 것이 목사님 말씀의 요지였다. 

어린 시절 외가에 우물이 있었는데 두레박을 들면 일하는 언니가 어디서 보고 쫓아와서 빼앗아가곤 만지지 말라고 엄포 했던 기억이 난다. 두레박을 빠트려도 말썽이고 물을 긷는다 해도 막 휘저어서 물을 흐리게 한다는 게 접근금지의 이유였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하면 길어 주겠다는 구슬림으로 말을 마치는 게 순서였다.

아, 참 훌륭한 목사님을 모시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우물을 생각하면 항상 시원한 물을 마실 생각을 하거나 여름이면 철사망 그릇에 고루 담긴 과일들이 떠올랐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물을 길어 마시게 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베푼다는 일은 내 몫이 아니고 언제나 편안히 받아먹기만 하는 게 내 몫이었던 것 같다. 

철이 들면서 학교에서 적십자 활동 같은 것을 통해 봉사라는 것을 실천해 보고 여러 모양으로 훈련 받았으나 내가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베푸는 일은 많은 생각을 한 연후의 일이었던 게 솔직한 내 모습이 아닌가 한다. 

지하철 안에서나 길거리에서 밥을 못 먹었다, 차비가 없다 등의 이유를 대며 손을 내미는 사람을 만나면 선뜻 돕고 싶은 마음 보다는 거짓말일 거야, 자꾸 도와주면 거리 질서를 계속 어지럽힐 거야, 돈을 주려고 지갑을 꺼냈다가 가로채 갖고 도망가면 어떡해, 등등의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는 뒷전으로 가버리고 인색한 마음에 그런 이유들로 자기합리화를 시켜서 편안하고 당당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웃의 마음에 못질을 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새해부터는 도움을 청하면 두레박은 못 되어도 물 한잔은 나누어 마셔야겠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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