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의 겉장이 상하지 않게 책가의를 입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구점에서 사 온 포장지를 꺼내고 대단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천천히 포장을 시작합니다. 교과서에 딱 맞는 크기의 비닐 포장지가 제작되어 판매되니 자를 필요도 없고 간편해졌습니다. 이보다 더 오래전에는 아빠가 흰 달력으로 교과서를 포장해 주셨습니다. 교과서를 가지런히 쌓은 다음 흰 달력을 교과서 크기에 맞게 자르며 정성스럽게 포장해 주셨습니다. 교과서 포장은 역시 흰 달력이 제격이었습니다. 어릴 적 교과서를 포장하시던 아빠의 손놀림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이뿐입니까? 새 학기가 되면 1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활 계획표를 세워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다짐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큰일을 한 것 같이 마음이 흐뭇하고 대견했습니다. 물론 며칠 못가서 다시 계획을 세울망정 새 학기를 맞이하며 해년마다 반드시 해오던 일들입니다.
성서에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짐하고 작정하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출 19: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실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내용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핵심에는 율법이 있고 이 율법을 지킬 때 계약은 유지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준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말씀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화목제물을 이웃과 나누라,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남겨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레 19장) 등과 같이 구체적인 섬김의 내용이 담긴 디아코니아 사역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를 전하자 백성들은 한 소리로 모든 것을 준행하겠다고 다짐합니다.(출 24:3) 백성들은 구체적인 계획표를 세우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심한지 삼일도 안 되어 금송아지를 섬기고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할 것을 하나님은 아셨지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작심삼일’ 계획표를 만듭니다. 자녀는 방학 중 생활계획표를 만들고 어른들은 금연이나 다이어트를 계획합니다. 어쩌면 이 계획들도 삼일천하의 공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다짐하고 계획을 세워 하나님의 명령, 디아코니아 사역을 실천해야 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획표를 짜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한해가 되기 위해 꼭 이루어야 할 일들을 찾아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을 뛰어넘어 꾸준히 세운 계획들을 이루어나가는 한해가 되기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