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쉽고도 어려운 기도, 어떻게 할까?

Google+ LinkedIn Katalk +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라고 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은 광대(廣大)하고 무한하시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이며 절대 주권자이시다.  초로(草露)와 같은 인간,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해 주셨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그 아들의 영(靈)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를 자녀로 택하여 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도할까?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신다.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기도를 할 때 가끔씩 마음 깊은 곳에 감동으로 가득 차오르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에 의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시며 내 삶에 들어와 계신다. 내 안에 거하고 계시며 나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고 기도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어 드릴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친구라고 하셨다. 다윗에게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친구’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셨다. 그 기도에 하나님의 뜻, 일용(日用)할 양식, 용서, 시험 등 일상생활과 관계된 것들을 포함시키셨다.

시편에 나와 있는 기도는 세상에서 살다가 부딪힌 모순과 상황에 대한 불평과 탄식이 망라되어 있다. 성내고 짜증도 낸다. 후회하고 격정적일 때도 있다. 불손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까지도 다 들어 주신다. 오히려 위선적, 가식적인 기도를 싫어하신다. 마음이 가난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해결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바를 아뢴다.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성공하고 부자 되기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을 받으며 이루어지는가? 가장 어려운 물음이다. 예수님께서도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려 드렸다. 그러나 결국은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응답이 되어 은혜로운 역사를 이룬다. 인간의 자유를 어느 정도 존중하시므로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허용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하는 400년 동안이나 침묵하신 후 모세를 통해 구원해 내셨다. 주님께서도 모든 병자를 다 고쳐주지 않으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나타내는 징표가 될 수 있을 때만 기적을 일으켜 주셨다. 기도는 개인적인 영적 활동이다. 때문에 소홀히 할 때가 많다. 엄격한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칼빈의 말이다. “두세 번 간구하다 말 게 아니라 똑같은 기도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필요한 만큼 자주 반복해야 한다. 절대로 지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윌리엄 제임스) “기도는 인간이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불완전성 그 자체이다.”(토머스 머튼)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 귀를 만드신 분이 듣지 않으실 리가 있겠는가?”(조지 허버트)

가장 관심을 끄는 말이다. “간청하고 흐느껴 울기도 한다 하찮은 찬송으로 하나님을 부담스럽게 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잘 알고 계신 죄를 새삼스럽게 털어 놓는다. 창조주의 한결 같으신 뜻을 바꿔보려고 안달을 한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은혜에 힘입어 그 기도가 용납된다.”(프레드릭 뷰크너)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