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유식한 문자 쓰다 망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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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말이란 말은 모두 유식한 한문(漢文)으로 쓰기를 좋아하는 사나이가 있었다. 어느 날 처가를 방문했는데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저녁 산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내려와 장인을 덥석 물어갔다. 놀란 처남이 횃불과 몽둥이를 들고 호랑이를 뒤쫓아 가면서 그 유식한 매부더러 부탁하기를, “동네 사람들을 모두 깨워 연장들을 챙겨 빨리 뒤따라오라.”고 당부하였다. 이 사내는 위급한 상황에서 온 동네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며 돌아다녔다. 

*遠山之虎(원산지호)가, →먼 산의 호랑이가, *自近山來(자근산래)하여, →가까운 산으로부터 내려와서, *吾之丈人(오지장인)을, →나의 장인을, *捉去也(착거야) 했으니, →잡아 갔으니, *有銃者(유총자)는, →총이 있는 사람은, *持銃來(지총래)하고 →총을 가지고 오고 *有槍者(유창자)는, →창이 있는 사람은, *持槍來(지창래)하되, →창을 들고 오되, *無銃無槍者(무총무창자)는, →총도 창도 없는 사람은, *皆持蒙同(개지몽동)하고서, →모두 몽둥이를 들고서, *速速來(속속래)하라! →빨리빨리 오라! *速速來(속속래)하라! →빨리빨리 오라!

그 유식한 사위 녀석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동네 사람들은 어느 술 취한 놈이 시끄럽게 외치고 다닌다고 생각할 수밖에! 간신히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한 아들이 너무 매정한 동네 사람들의 행동을 원망하다 참을 수 없는 울분에 원님에게 동네사람들을 고소하였다. 

원님은 동네 사람들의 매정함을 호되게 꾸짖으며 문초를 하니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라. “간밤에 웬 녀석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다닙디다마는 그런 사정인 줄이야 전혀 몰랐지요.” 자초지종의 사정을 알게 된 원님이 화를 불같이 내며 문자를 쓴 사내의 엉덩이에 곤장을 치는데, 이 사내가 한다는 소리가! *伐南山之松木(벌남산지송목)하야, →남산의 소나무를 베어다가, *吾之肥臀(오지비둔)을, →나의 살진 볼기를, *亂打也(난타야)하니, →마구 때리니 *哀也臀(애야둔)이야! →아이고 볼기야! *哀也臀(애야둔)이야! →아이고 볼기야! 

원님이 이 사나이를 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며칠 후, 끌어내어 무릎을 꿇려 엄하게 묻는다. “네 이놈! 다시 또 ‘문자’를 쓰겠느냐?” 유식한 사위 녀석의 대답인즉, “此後(차후)론, →지금 이후로는, *更不用文字(갱불용문자)하오리다, →다시는 문자를 쓰지 않으오리다.” 그나저나 또다시 ‘문자’로 대답했으니 어찌 무사할 수가 있으랴! 결국엔 그 사위 녀석은 멀리 귀양길을 떠나게 되었다. 언제 풀려날는지 기약도 없는 먼 귀양길! 그래도 그 사나이의 외숙이 생질(甥姪)이 안쓰러워 떡을 해서 짊어지고 전송(餞送)을 나왔다.

“아이구, 이놈아! 어쩌자고 문자는 써가지고? 앞으로는 제발 문자 좀 그만 쓰고 배고플 때 이 떡으로 요기(療飢)라도 하거라.” 그런데 외삼촌은 애꾸눈이었다. 둘이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다가 이 사내가 또 한 마디! “*兩人(양인)이, →두 사람이 *相抱泣(상포읍)하니, →서로 끌어안고 우니, *淚三行(누삼행)이라, →눈물이 세 줄기라.” 이 말을 듣고 참다못한 애꾸눈 외숙이 생질에게 던진 말: “예끼! 이 망할 놈, 당장에 뒈져라!”

이 일화는 스토리의 내용과 전개가 다소 황당한 느낌을 주지만 한문글자를 이용하여 이런 풍류(風流)와 해학(諧謔)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가 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한자 용어를 사용해서 웃음과 유머를 제공해주는 옛 문장과 옛 어투가 주는 즐거움은 비속어를 나열해서 억지로 웃음을 짜내는 현대 사회의 개그(gag)와는 그 품격을 달리한다. 

조선시대 정조(正祖) 임금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는 학문적 동지였으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던 친구였다. 어느 날 정조가 다산에게 말장난을 건다. “내가 요즈음 ‘떡’을 좋아한다네.” “전하, 갑자기 웬 ‘떡’을 좋아하십니까?” “하하하, 내가 ‘덕’이 부족해서 혹시 ‘떡’을 먹으면 부족한 ‘덕’이 풍부해질까 싶어서 말이야!” 

우리말의 ‘경음화(硬音化=된소리)현상’을 이용, ‘ㄷ’과 ‘ㄸ’을 대조하여 전개한 ‘언어유희(言語遊戱=말놀이)’가 흥미롭다. 정조와 다산이 한글과 한문 속에 들어 있는 의태어(擬態語)와 의성어(擬聲語)를 활용한 대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음 주에 두 사람의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언어유희’를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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